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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일제와 군부의 박해, 비운의 터…'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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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서울스토리]일제와 군부의 박해, 비운의 터…'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사진/남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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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복궁 동쪽 출입구인 건춘문 앞에 웅장한 현대식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오는 11월13일 개관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서울관')이다. 서울관 부지는 경복궁, 창덕궁 등과 인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북촌 한옥마을, 남서쪽으로는 광화문 광장, 남동쪽으로는 인사동 거리와 연결된다. 서울관은 2011년 착공해 현재 막바지 공사로 분주한 모습이다. 공사 기간 동안 대형 화재, 돌담 복원 논란 등 여러 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관이 들어서는 부지의 오랜 내력에 비하면 곡절이랄 것도 없다.

서울관은 서쪽을 정문으로 하며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해 있다. 맞은 편 담장 너머로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앞에는 수령이 200년이나 된 비슬나무 한 그루가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마치 세상의 풍파를 다 견딜 수 있다는 듯, 굳건한 형상이다. 비슬나무는 5월 하순에 잎이 피며 궁궐이나 한옥의 마당 한켠에 심긴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관 전체 연면적 중 전시공간은 8개실로 1만450㎡(27%), 수장공간 3825㎡(10%), 문화ㆍ교육공간 4750㎡(12%), 자료ㆍ정보공간 2155㎡(5%), 사무공간 2941㎡(8%), 주차장 1만4806㎡(38%)로 구성된다. 전시실은 옛 기무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에 집중 배치했으며 제1전시실을 제외하고는 전부 지하에 있다.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팀장은 "해외의 일부 미술관이 지하를 적극 활용한 사례는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미술관처럼 전면적으로 집중, 배치한 경우는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설명한다.

[서울스토리]일제와 군부의 박해, 비운의 터…'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공보행통로. 사진/남궁선

서울관은 주변 도로 4면 어디서든 전시실로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마당을 가로질러 누구나 인근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골목길 형태의 동선은 열린 공원과 같은 개방형 미술관을 표방한다


서울관은 경복궁을 등지고 보면 좌측으로는 초현대식 건물, 우측으로는 고졸한 느낌의 벽돌 건물이 나란히 분리, 배치돼 있다. 두 건물 사이로 통로가 놓여 있어 서울관 중심 마당으로 이어진다. 통로를 따라 몇 걸음 올라가면 마당 건너편, 즉 서울관의 후면에 옛 전통 궁궐 형식의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서울관 설계를 맡은 민현준 엠피아트 대표는 "옛 전통 건물은 서울관의 역사적 맥락과 한국적 문화 특성을 설명해 주면서도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설명과는 달리 건물은 전각처럼 기단 위에 설치돼 위용을 보이기는 하나 주변 건물과는 규모상으로 왜소한 탓에 부조화스러워 보인다. 또한 마당과 건물 주위로 나무 등 조경이 이뤄지지 않아 한국적 전통을 상징하고 있다기에는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건물이 국립현대미술괸의 정체성을 설명해주기에는 왠지 부족하다. 그러나 서울관 부지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서울관 부지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36으로 주소가 돼 있다. 당초 부지는 조선 왕실 종친부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당 자리다. 조선 시대 종친부는 인근 안동별궁(현 풍문여고 자리)의 경연당, 정화당, 현광루와 감고당(현 덕성여고 자리) 등 여러 현저(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 혹은 왕의 아버지가 살던 집)와 어울려 왕궁을 옹위하고 있었다. 즉 왕실 외척과 후궁들이 경복궁을 드나드는 건춘문 앞에 위치, 감시 초소 역할도 했음직하다. 턱하니 건춘문 앞을 지키는 종친부에 왕실 친족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외척들도 궁을 출입하면서 눈치가 보이지 않을 리 없을 터다.

[서울스토리]일제와 군부의 박해, 비운의 터…'국립현대미술관' 종친부 건물. 1981년 신군부에 의해 옛 경기고 자리로 옮겨졌다가 최근 제자리로 돌아온 경근당과 옥첩당.사진/박흥순


종친부는 어보(임금의 도장)와 영정(초상화) 등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관리, 종친의 봉작세습 및 관혼상제 등 사무를 담당했다. 조선 전기에는 '제내제군소'로 불렸으며 세종 12년(1430년) 종친부로 이름을 바꿨다. 종친은 왕의 정식 왕비가 낳은 4대손, 후궁이 낳은 3대손로 한정한다. 순종 융희 1년(1907년) 폐지돼, 규장각으로 쓰였다.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이곳에 학무국 분실을 뒀다. 학무국은 경복궁 담장 너머로 총독부와 총독부 박물관 등과 인접해 있으면서 식민지 교육, 문화정책을 수행했다. 이후 1928년 일제는 종친부 자리 일부에 3층 높이의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으로 활용했다. 해방 이듬해 서울대 의대 제2부속병원으로 활용되다가 1978년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개편됐다.


종친부의 비운은 신군부 때 절정에 달했다. 1981년 12ㆍ12 군사 반란을 통해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병원을 국군기무사령부로 썼다. 당시 신군부는 기무사 건물을 지으며 경근당과 옥첩당을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현 정독도서관)로 옮겼다. 이전 이유를 보면 가관이다. 바로 테니스장을 짓고, 운동장 등 체육시설로 쓰게 위해서였다.


종친부는 서울관 공사가 한창이던 2010년 발굴 조사에서 월대(月臺ㆍ궁전이나 누각 앞에 세운 섬돌)와 다짐층 등 기단부 흔적이 발견되면서 옛 터가 드러났다. 그러나 이전 문제를 놓고 설계변경, 공시기간 문제 등 여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기무사 건물은 서울관 남측의 붉은 벽돌건물로 리모델링돼 전시실로 탈바꿈됐다.

[서울스토리]일제와 군부의 박해, 비운의 터…'국립현대미술관' 일제는 1928년 경성의전(현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으로 썼다. 그 이전에는 식민지 교육,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학무국으로 활용했다. 사진은 옛 경성의전 부속병원의 모습.


기무사는 군부대로 각종 정보 수집 및 사찰, 민간인 감시 등 정권 하수인 노릇을 하며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와 더불어 정보기관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시민운동가들의 체포, 구금, 고문 및 간첩단 조작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기무사는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이전이 확정돼 송파로 옮겨갔다. 2009년 문화예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이 확정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방부에 부지 매입비 1038억원를 지불하고 땅을 확보,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립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고통의 흔적은 말끔히 세탁돼 역사적 증거가 인멸된 상태다. 옛 기무사터라는 내력은 그저 붉은 벽돌 일부에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문화해설사는 "종친부는 조선 후기 외척에게 짓밟히고 세력이 약화됐고, 일제와 신군부를 거치며 갖은 수난으로 기구한 운명을 이어 왔다"고 "그나마 이제라도 복원돼 조선 후기 건축 문화재로 보존될 수 있게 됐다"설명했다.


종친부의 본채인 경근당과 별채인 옥첩당을 이루는 두 건물은 복도로 연결, 본채 앞은 월대라는 높은 기단을 형성하고 있다. 복도는 본채 뒷편과 부속채 앞쪽의 트인 공간을 연결하면서도 두 건물의 서로 다른 높이로 계단 역할을 겸한다. 경근당은 앞면 7칸으로 목조건물로는 규모가 큰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종친부, 신축된 현대식 건물, 리모델링한 기무사 건물 등 각기 성격이 다른 세 개의 건물을 이루며 오는 11월 이후 관람객을 맞게 된다. 또한 서울관은 경복궁 등 문화재 및 북촌 한옥 보존마을의 배경으로 기능하면서 한국 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자리한다. 미술이 과연 외세와 군부에 의한 수난사를 덮어줄지, 역사 인멸의 한 방편이 될지는 수많은 관람객의 역사적 이해에 달렸다.

[서울스토리]일제와 군부의 박해, 비운의 터…'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정면. 사진/명이식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개관 이후 각종 기획전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향취와 더불어 다시금 역사적 교육을 새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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