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들기 위해 이를 닦고 있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를 넘긴 시간. 이 시간에 누가 나를 찾는 것일까. 회사는 아닐 테고, 그럼 아내일까, 아니면…혹시? 전화의 대표적 속성 가운데 하나가 이쪽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야만성인데, 그 중에 가장 곤란한 타이밍이 바로 지금처럼 입에 뭔가 들어있을 때가 아닐까. 부모님께서 부르면 입에 있는 음식을 뱉어내고라도 곧바로 답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쉽지 않은 주문이고. 가늘게 이어지다 끊어지기를 몇 차례. 늘 그렇듯 폭력에 굴복하여 입을 대충 헹궈낸 뒤 밖으로 나가보니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 절박한 벨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난처한 상황. 침대 앞 쪽으로 조그맣게 벽에 붙어 있는 테이블 위를 둘러보고, 침대 옆 탁자, 심지어는 옷장에 걸려있는 옷가지에 구두 안까지 다 뒤져봤지만 휴대폰은 없다. 그러다 문득 '맞아, 이 방에는 지금 휴대폰이 없어'라는 자각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 강원도 고성에서 남쪽 출입국관리소를 거쳐 4㎞의 비무장지대를 통과한 뒤 북쪽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북한 땅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휴대폰은 압수당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는 장전항에 떠 있는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 해금강호텔의 객실. 휴대폰 벨소리는 결국 환청인 것이다.
금강산관광을 다녀온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됐는데 휴대폰을 볼 때마다 그 환청의 경험(어쩌면 충격)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내 호주머니에 휴대폰이 들어있는 게 아니라 휴대폰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따지고 보면 그 일이 있고나서 몇 달 뒤 광화문 밤거리에서 만취된 채 휴대폰을 냅다 8차선 도로 위로 집어던져 버린 그 역사적 사건도 그날 밤늦게 울린 벨소리와 연관된 건 아닐까.
어쩌면 오늘 밤 자정이 가까워지면 또 다시 휴대폰 벨소리가 길게 울려 나를 흔들어 깨울지 모르겠다. 그날 밤 그랬던 것처럼.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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