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서울 남산에는 원래 마주보고 있는 산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지각변동으로 그 산은 남산과 멀리 떨어지게 됐다. 그 산은 지금 중국에 있으니, 중국인들이 천하의 명산으로 손꼽는 '여산'이다. 지금 두 산의 이름은 '남산(南山)'과 '여산(廬山)'이지만 이는 지리가 변하면서 바뀐 것으로, 본래 이름은 '남산(男山)'과 '여산(女山)'이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으며, 암컷이 있으면 수컷이 있는 것처럼 자연의 모든 것에 음양이 있으니 산에도 짝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다만 산의 형세를 볼 때 남녀의 성이 뒤바뀐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법한데, 그러나 이는 후세의 여성 신장을 예견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내가 탐구한 믿거나 말거나의 남산과 여산의 내력이니, 이것이 진짜인지는 부디 지질 전문가들이 밝혀주길 바란다.
나는 다만 여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한 편의 시에 담긴 가르침을 얘기하고 싶다. 중국에서 천하의 절경으로 꼽히는 이 산은 그 경치에 반한 문인들의 작품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는데, 그 중에서 소동파의 시 한 편은 특히 그 의미가 출중한 것이었다.
여산을 찾았다가 이 산 속의 서림사라는 절에 쓴 시에서 그는 철리(哲理)의 깨달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여산의 봉우리들이 보는 위치에 따라 제각각 보인다면서 이렇듯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것(不識廬山眞面目)은 왜인가라고 자문하고는 그건 자신이 이 산 안에 있기 때문(只緣身在此山中)이라고 말한다. 산 안에 있으니 오히려 산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그 전모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거센 논란을 낳고 있는 문제들, 그 논란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노라면 문제의 '안'에 갇혀 다투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안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소동파가 여산 안에 들어간 것처럼 일단 그 문제 안으로 들어가 철저히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겠지만 그 안에 머무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문제 '밖'으로 나와 멀리서 바라보고 위에서 내려다봐야 그 문제의 봉우리는 어떠며 골짜기는 어떤지, 그래서 진면목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안팎의 시야를 함께 갖추는 것이 '선진사회'의 한 지표일 것이다. 이런 교훈을 더욱 생생히 얻기 위해서라도 여산과 남산 간 관계의 규명을 지질학자들이 빨리 서둘러 주기 바란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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