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나간 날이나 앞으로 올 날을 세는 방식은 참 답답하다. 하루 전은 어제, 이틀 전은 그제, 사흘 전은 그끄제. 하루 뒤는 내일, 이틀 뒤는 모레, 사흘 뒤는 글피, 나흘 뒤는 그글피. 나흘 전은 그그끄제이고 닷새 뒤는 그그글피이겠지만 그건 잘 쓰지 않는다.
과거를 세는 것이 더 빈약한 것이 눈에 띈다. 그끄제는 그제를 한번 더 반복한 것이니 사실상 이틀 전부터 날짜를 지칭하는 것이 숨차다. 날짜가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엊그제라는 말이 나온다. 어제와 그제를 대충 버무린 대강의 날이다. 그리고 '께'가 붙어서 날짜를 얼버무리기도 한다. 어저께, 그저께, 그끄저께가 그것이다. 어제, 그제, 그끄제와 사실상 같은 말이면서도 혹시 틀릴 수도 있는 기분을 담았다. 미래를 세는 것은 그래도 하루를 더 주었다. 나흘 뒤부터 그그그 타령을 시작한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우리가 지나간 날짜를 헤아리는 것보다 다가올 날짜를 헤아리는 데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의미일까. 지나간 날짜는 더 쉽게 잊어버리고 다가올 것을 손꼽는 데 더 마음이 가 있다는 뜻일까.
하지만 미래를 헤아리는 표현들은 그야말로 누더기이다. 내일(來日)은 순수한 우리 말도 아니다. 우리 말로 풀면 '올 날, 오는 날'이 되는데, '오늘'이 '온 날'이라면 두 말이 비슷한 의미 형식으로 되어 있으면서 뜬금없이 한자어로 바뀌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글피라는 말은 경기 지방 일대의 표준어로는 익숙할지 몰라도 내 고향 방언에서는 아예 없었다. 그냥 모레 뒤에는 '그모레'였다. 글피를 대신하는 '그모레'는 과거를 가리키는 그끄제와 시간적 대칭을 이룬다. 경상도는 과거를 헤는 것과 미래를 헤는 것이 똑같이 어수룩한 어림셈이라는 얘기가 될까.
과거가 깊어질수록, 미래가 깊어질수록 군소리 '그'가 붙는 것은 묘하다. '그'는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직접 대상을 앞에 두고 지목하여 가리키는 '저'와는 달리, 마음 속에 손가락을 펴고 기억이나 상상 속에서 집어내는 무엇이다. '그'는 마음의 손가락인 셈이다. 그러니까 그끄제나 그글피라고 할 때 우리는 당장 무엇을 쉽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눈을 안으로 돌려 기억이나 추상을 더듬어 내서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날짜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그 날짜들은 틀리기 십상이고 헷갈리기 일쑤이다. 그그그가 늘어날수록 더욱 엉성해진다.
저 날짜 헤아리기만 들여다 보아도,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시간이란 얼마나 짧고 단편적인 것인지 실감난다. 과거 시간 3일쯤, 그리고 미래 시간 4일쯤을 간신히 마음에 담아두고 다닌다. 달력이나 기록이 없으면 그 나머지 시간은 가뭇없다. 해달불물나무쇠흙으로 만든 일곱 날이나 신의 창조 다이어리 7일은 이런 인간 생각노트의 크기를 고려한 것일까. 인간의 인식에 불이 들어와 겨우 보이는 일주일의 시간을 두리번거리며 우린 살아간다. 그 앞뒤는 캄캄하다. 그러면서도 우린 많은 것을 보는 체하고 아는 체한다. 지나간 날짜, 이를테면 18일 전이나 36일 전을 쉽게 떠올릴 수 없고, 9일 뒤나 33일 뒤를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이 어처구니 없는 '시맹(時盲)'의 삶을 가만히 생각해보라. 그그그제와 그그글피를 더듬거리며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어두운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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