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분 선생은 사뭇 달랐다.
늘 2대 8 가르마, 싱글 정장으로 교단에 올랐던, 단정하지만 시니컬한 ㅅ은 '넓고 곧은 길' 보다는 '남이 가지 않은 길' 또는 '길 없는 길'을 강조하셨다. "구태여 무엇을 하기보다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도 하셨는데 그 때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리송하다.
개인의 삶이나 인류의 역사에는 저마다 일관된 흐름이 있으니 "크게 보면서 길을 떠나라"고 하셨던 ㄹ은 평소엔 힘없는 노인이었지만 분필만 잡으면 휴식 없이 서너 시간 교실이 떠나가라 거리낌 없이 토해 내셨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숙고와 잠행-교류와 타진-도약과 비상-겸손과 반성'의 사이클이 반복되기 마련이니 때에 맞게 움직이라는 취지로 받아들였는데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지금도 자신이 없다.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 않고 승용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하셨던 ㅇ은 지혜보다 실천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강의는 지극히 심오하여 요령부득이기 십상이었다.(어쩌면 너무나 뻔한 이치라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과론이 아닌 연기론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따지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해도 실천도 쉽지 않다.
끝으로 오늘의 주인공, ㄱ은 지식전파에는 관심이 없는 듯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사랑하는 여인과 혼인하기 위해 여름 한철 황토를 지게로 날라 흙벽돌을 찍고 그늘에 말려 부엌과 방 한 칸짜리 집을 혼자 지었다는 경험담인데 "남자가 아내를 얻으려면 그 정도 고생은 능히 감수해야한다"는 말로 마무리해 여학생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다. 그는 틈만 나면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할 수만 있으면 교육은 그걸로 끝"이라고 했는데 20대가 이해하기는 무리였고….
며칠 전 책을 읽다 '좋은 것을 보거든 그와 같이 되려고 노력하고, 좋지 않은 것을 보거든 두려워 할 줄 알아야한다'(견선사제 견불선지구, 見善思齊 見不善知懼, 퇴계 이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는 대목을 발견하고 문득 ㄱ 선생님이 떠올랐고, 이어 ㅅ ㅇ ㄹ로 이어진 것이다. 네 분 모두 이쪽을 떠나 저 쪽으로 건너가신 지 꽤 오래 됐다.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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