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 강보에 싸이고, 가위바위보 하며 놀고
책보자기 메고 학교가고, 보따리 화장품 장사하고
밤상보에 덮인 보쌈 먹고, 보자기 앞치마에 눈물닦던…
보자기를 바라보며 몬드리안의 미학을 연상해내는 특별한 안목도 있더라만, 내게 그 물건은 어쩐지 슬프고 어쩐지 가난한 뉘앙스로 얼기설기 짜깁기 되어있다. 낱말에 냄새가 난다면 거기엔 땀냄새와 눈물냄새와 해묵은 삶의 냄새가 배어있다. 사각형의 천. 용도가 아주 다양해서 딱히 무엇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어쩌면 필요의 세목을 모두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생겨날 수 있는 예측 못 했던 필요까지를 다 싸안을 수 있는 그런 만능의 소품이다. 값 또한 비할 데 없이 싸거니와 만들기도 어렵지 않은 물건이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비교적 만만한 것이었다. 한 가지 특기가 있는 게 아니라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랑은, 쓸모있다는 칭찬을 듣긴 하지만 이 경우엔 천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다닌다. 보자기는 보따리나 보퉁이나 보새기 따위로 불리지만 어느 이름도 그 이름에 끼어있는 살이의 고단한 모양새를 지울 수는 없다.
어린 시절 책보따리는 그렇지 않았던가. 외부의 충격이나 압력을 전혀 견뎌주지 못하는 보따리의 특징 때문에 아끼던 책들의 모서리는 날렵한 각도를 잃고 두루뭉술하게 접혀져 올랐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단촐한 몇 권의 책을 보따리에 싼 뒤 두 귀는 책을 묶는데 쓰고 나머지 두 귀는 등에 붙인 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비스듬히 몸에 묶었다. 책보따리를 메고 길고 먼 학교길을 돌아오노라면 등 뒤엔 늘 양철도시락 속의 찬통이나 젓가락이 딸그락거렸다. 도시락 속에 남아있던 김치국물은 교과서의 귀퉁이를 붉게 물들이고 책보에도 큼직한 반점을 만들었다. 책보와 함께 붙어있던 등짝에도 붉은 물이 올라 어머니의 꾸지람을 벌었다. 가끔은 잘 매조지지 못한 묶임새 때문에 헐렁한 틈바구니로 필통이나 크레용통이 떨어져 길바닥에 굴러가는 지우개와 연필 따위를 줍느라 바빠지던 때도 있었다. 이 고생보따리가 산뜻하고 편리한 비닐책가방으로 바뀌던 날은 놀라움 자체였다. 문명은 내게 그런 단계로 다가왔다.
한밤중 몰래 씌워 사람 훔쳐오던 보쌈
보쌈이란 말에는 전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서성거린다. 여자의 경우 남편을 여의면 다시 시집을 갈 수 없던 시대, 만약 재가를 하면 그 자손에까지 죄를 묻던 그 얄궂은 시대에 보쌈이 암암리에 생겨났다. 양반집 딸이 두 남자를 섬겨야할 팔자라는 예언을 들었을 때, 그 집에서는 팔자땜을 하기 위해 한밤중에 총각 하나를 보자기에 싸서 잡아와서 처녀와 하룻밤 동침을 하게 한 뒤 쥐도 새도 몰래 죽여 없앤다. 이것이 그저 우스개나 이야깃거리를 지나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이 아니라면 어찌 그것을 가리키는 표현인 '보쌈'이란 말이 있었을까. 난데없이 보쌈정혼을 치른 뒤 죽어야 하는 몽달귀신들의 비명들은 얼마나 황당한 음조로 울렸을까. 인간의 운명이 그런 식으로 예정되어 있음을 믿은 사람들과, 그런 운명이 다시 인간의 그런 얄팍한 술수로 피해갈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을 우린 웃어야 할까. 아니면 가엾어 해야 할까.
안동 사는 한 선비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고전소설 '정수경전'은 바로 보쌈설화를 이야기의 뼈대로 채택한 작품이다. 보자기 속에 담겨 어느 재상의 집으로 가는, 그리고 그 집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졸지의 운우지정을 치른 뒤 다시 보자기에 담겨 수장(水葬)되러 가는 총각 정수경은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천조각이 입과 눈과 귀를 가로막는 정확히 자기 몸뚱이만 한 여지(餘地) 안에서 그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을까. 이렇게 남의 목숨까지 빼앗아야할 만큼 절박했던 그 시대의 질곡과 강박과 광기를 읽었을까. 그는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던 유생이었다. 그가 뜻을 펴려던 세상은 인간 스스로가 쳐놓은 법과 모럴의 그물에 얽히고 설킨 이 소설 같은 풍경 속이 아니었던가. 이데올로기란 이렇듯 한 겹 천으로 인간의 이목을 가리는 위선에 다름아님을 그는 느꼈을까. 보자기 하나는 그리하여 한 시대의 모순을 덮는 긴요한 알리바이였다. 수육과 김치를 곁들여 먹는 먹음직스런 요즘의 보쌈요리에서 몇 백년 전 음험한 살기를 띤 악습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머리에 쓰던 화사한 보자기 수건
어머니를 연상하는 실루엣들에서 보자기를 빼버린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닐 것이다. 면수건들이 나오면서 역할을 대신하긴 했지만 보자기는 여인들을 치장하던 중요한 머리장식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따가운 햇살을 가려 안 그래도 노동으로 검어져가는 얼굴을 조금이라도 덜 태워보려는 욕심까지도 그 보자기에 담았다. 보자기에 새겨진 꽃무늬들은 어머니에게 마지막 남은 미적 재량권이었으리라. 자신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화사하게 하는 무늬와 색깔을 찾아내려는 어머니의 노력은, 시장통에 서서 오랫동안 보자기 하나를 고르는 그 공들임에서도 드러났다. 모서리가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해당화 꽃무늬의 보자기 수건 아래로 해사하게 웃는 여인을 생각하노라면 나는 어느새 그 곁에서 작은 손으로 매달린 다섯 살 아이가 되어있다.
뿐만인가. 부엌에서 간단없는 물일을 하시다가 치마께에 손을 비비며 쓱쓱 닦으시는 그 자리에도 늘 보자기가 매달려 있었다. 앞치마용으로 쓰이던 그 보자기는 가끔 밥풀이나 반찬자국이 묻어있기도 하고 부엌의 검댕이 묻어있기도 했다. 언제나 내가 치마에 얼굴을 묻을 때면 보자기의 까슬까슬한 질감과 함께 어머니를 기표하는 노동의 얼룩들이 코끝으로 다가왔다. 신나는 외출 때 어머니의 손에는 늘 두어개의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가방이 귀했던 시절이라 모든 적재수단은 이 천조각이었다. 비교적 작은 보따리 하나를 내가 들었지만 가끔 장난삼아 봇짐꼭지를 뱅뱅 돌리다 매듭이 풀어져 정종을 담은 유리병이나 참기름병이 깨지거나 해서 야단을 맞았다. 내가 깨진 병조각을 내려다보며 울고 있을 때 어머니는 머리 위에 이고 계시던 묵직한 보따리 하나를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저고리 고름으로 내 코를 닦아주시며 괜찮다, 무시마가 그깐 일에 울면 쓰나, 하신다. 그리곤 유리파편을 꺼내 버린 뒤 젖은 보자기를 조심스레 개서 머리 위에 겹으로 얹어 내렸던 짐을 다시 이신다. 어느날 서울 부근서 옷가게를 하는 이모가 몇 장의 화사한 보자기를 선물로 들고 왔을 때 기뻐하던 어머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머리에 써보기도 하고 허리에 매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접어도 보면서 이 작은 물건을 완물(玩物)처럼 어루만지는 그녀. 소녀가 따로없었다. 밤늦게 이웃 아주머니 집에서 이야기가 길어질 때면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보자기를 이불 삼아 곁잠을 잤다. 모성의 은근한 육향이 밴 그 보자기 안의 세상은 안전하고 아늑했다.
가위 바위 보의 마지막이 보자기인 걸 배운 건 외숙모에게서였다. 외숙모는 말했다. 가위로는 바위를 못자르지만 보자기로는 덮을 수 있다고. 그래서 바위가 보를 못 이기는 거라고. 그러나 가위는 보자기를 자를 수는 있다. 그래서 가위는 보를 이기는 거라고. 서로 엇물린 이 세 가지 사물의 우열을 게임으로 채택한 옛사람들의 지혜에 놀랐지만, 그 어린 마음에도 가위와 보자기는 안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잘 어울리지만 왜 갑자기 바위는 불러들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위와 바위가 마침 비슷한 음값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을까. 가위로 바위를 자른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지 않은가.
혹시 이런 착안이 보자기의 위대함을 역설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바위조차도 감쌀 수 있는 저 여리고 보드라운 것의 패러독스. 보자기란 어쩌면 한 시대의 정신, 온갖 위험과 고난에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지혜와 자존심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가위는 무엇일까. 보자기를 잘라 못쓰게 하는 물건은 아니다. 그것은 보자기를 만드는 물건이다. 잘라뱅이 천조각들, 조리복소니가 되어버린 옷감들에서 보자기로 쓸 만한 천을 도려내는 기구이다. 그러니 가위가 보자기를 이기긴 하지만 그것은 해치거나 괴롭히는 이김이 아니라 상생의 이김이다. 보자기가 바위를 싸는 것도 바위를 못쓰게 함이 아닌 것과 같다. 여기엔 보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의 관대함과 깊은 애착이 있다. 고작 어린아이들의 놀이 하나를 가지고 너무 과민하게 해석하는 것일까. 손바닥을 시원스럽게 펼치면 우린 언제나 두 개의 보자기를 몸속에 걸치고 살아가는 셈이다. 강보(襁褓)에 싸인 목숨으로 이 세상에 올 때부터 돌아가 주검을 덮는 몇 겹의 천에 이르기까지 우린 보자기와 보자기 사이에 잠깐 몸을 드러낸 작은 살덩어리일 뿐이다.
왜 보자기가 바위를 이기는가
보자기나 보따리는 모두 보(褓)에서 나왔다. 보(褓)는 옷(衣)과 감싸다(保)를 합친 말이니 그 원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감이 잡힌다. 보자기와 보따리의 말빛이 다른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보자기는 그저 천 그 자체를 말하지만, 보따리에는 보자기 속에 든 물건까지를 함께 짐작하는 어감이 들어가 있다. 보따리는 짐이 들어있는 보자기를 말한다. 그저 펼쳐진 보자기를 보따리라고 말하는 법은 별로 없다. 그런데 보따리는 원래의 보(褓)에서 조금 쓰임새가 달라진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그저 사람의 주위에 둘러 보온을 하거나 치장을 하는 경우에 쓰이는 것이었는데 지혜로운 이 나라 사람들이 캐리어 용도로 확대해서 쓰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보따리에는 보자기보다 더 많이 궁상맞고 절실한 삶의 기운이 풍긴다. '동동구리미'를 내놓던 옛 보따리 화장품장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아모레 화장품이나 주단학 화장품은 그 구리미 장수의 보따리 속에도 들어있었다. 시골 아낙들의 굶주린 미적 욕구를 채워주던 저 아름다움의 전도사들은 이마가 무너져내릴 듯 가득하게 이고온 동동구리미들을 어둑한 시골 방안에 풀어놓고는 몇 시간씩 수다를 떨다가 가곤 하였다. 요즘 신문에도 가끔 누군가 협상을 하면 어떤 보따리를 풀어놓을까 하는 제목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보따리에 대한 향수와 무의식은 나만이 아닌가 보다. 겹겹이 꼭꼭 싸맨 매듭을 풀어헤치는 순간 눈부시게 펼쳐지는 그 마법의 양탄자를 기억하며 신문기자들은 그런 제목을 달지 않았을까 싶다.
산타의 선물도 거기 들어있었다
서양에서 건너온 산타클로스는 보따리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키워놓았다. 해마다 예수가 태어난 날이면 이 사람은 선물이 가득 담긴 무겁고 붉은 보따리를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지고 집집마다 들어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선물이라는 말과 보따리란 말이 아주 부드럽게 이어지게 된 것은 저 딸기코 할아버지의 공로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보자기를 자꾸만 미화하고 싶은 이 마음을 뒤집어보면 그 물건이 실용적인 가치와 미적인 헤게모니를 이미 상당히 잃고 시간의 저쪽 언덕 너머로 퇴조하고 있는 현실에 자극받고 있음을 느낀다. 저 얇은 천조각의 수송수단은 이제 가방이 훌륭하게 대체해버렸고, 장식용품으로 쓰기에는 보다 전문화된 스카프니, 앞치마니, 손수건이니 하는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이제 보자기는 전시대의 궁상과 촌스러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결국 보자기에 대한 아련한 감상들은 저 옛 물건들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한 무의식이 중얼거리는 쓸쓸한 시대착오에 다름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한 여인이 보자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단 얘길 듣는 순간, 그녀의 이미지가 어찌나 곱고 애잔해지던지! 요즘 사람들이 모두 내던져버린 지난 시간들의 지혜와 알뜰함, 그리고 단아한 무욕까지를 보자기라는 낱말 속에서 건져올리고 있었다. 보자기를 곱게 세탁해 개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사물거리면서 마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같이 눈물샘으로 울컥, 올라오는 무엇이 있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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