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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문정희의 '낙타초'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0초

사막에 핀 가시/낙타초를 씹는다/낙타처럼 사막을 목구녕 속으로 밀어 넣고/솟구치는 침묵을 심장에다 구겨 넣는다.//마른 땅 물 한 모금을 찾아 천길 뻗친 뿌리가/사투 끝에 하늘로 치솟아/허공의 극점을 찌르는/비장한 최후//뜨거운 모래를 걷는 날카로운 맨발로/어둠 속 별떨기 같은 독침을 씹는다.//새처럼 허공을 걷지 못해 제 혀에서 솟은 피/제 목에서 흐르는 선혈로 절명을 잇는/나는 사막의 시인이다.


문정희의 '낙타초'


■ 오랫 동안 사막을 걸어온 낙타가, 타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씹는 풀이 낙타초이다. 이 풀은 모래바람에 바싹 말라 수분이 다 사라지면 줄기가 뾰족한 가시로 변한다. 가시 끝에는 동물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물질이 들어있다고 한다. 낙타는 그 가시를 먹어 스스로의 혀와 입과 목을 찌른 뒤 솟아나오는 피를 마시며, 최후의 목마름을 견뎌낸다. 낙타와 낙타초는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승으로 걸어나오기 위한 필사적인 자해의 동반자이다. 문정희는 자신의 시가 어느 순간 그 낙타초와 같다고 믿는다. 시를 쓰는 결연함과 비장감이 과연 여기에 이를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허풍같지만, 낙타에게는 그 또한 절실한 생의 지혜이며 희망을 만들어내는 비기이다. 그래서 말없이 저 사막을 걷는 여인의 길을 따르며 고개를 숙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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