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저항하는 한 송이 작은 꽃/30촉 알전구 아래에서/바늘귀를 더듬던 어머니//세상으로 뚫린 유일한 숨구멍으로/의식주를 실어 나르던 낙타의 바늘에게.
유안진의 '바늘에게 바치다'
■ 시를 몇 번이나 읽으면서, 첫 행은 없었어도 좋았을 걸 하는 주제넘은 아쉬움을 꺼낸다. '30촉 알전구'란 말만으로도 전등이 간신히 밝힌 자리 바깥의 캄캄함이 이미 짚이고도 남는다. 시원찮은 조명 아래서, 입에 넣어 침을 묻힌 실끝을 꼿꼿이 한 뒤 바늘귀에 꿰려고 애쓰던 어머니에게 바늘은 유일하고 긴요한 생계수단이었다. 그녀에게 바느질은 취미나 집안일이 아니었기에,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를 찾는 일은 필사적인 생업의 일부였다. '더듬던'이란 표현 속에, 실을 단박에 꽂지 못하는 감질나는 풍경이 선연히 담긴다. 바늘귀의 좁직한 구멍을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충혈된 눈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바늘을 원망할 일인가. 저 바늘귀야말로 '세상으로 뚫린 숨구멍'이 아니었던가. 저 구멍을 통해 온가족이 숨을 쉬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바느질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어머니는 어린 것들을 키워냈고 가족을 건사했다. 실끝 하나 꽂아넣기에도 힘겹던 실구멍이 실은, 몇 십년 의식주를 실어나른 거대한 구멍임을 깨닫는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라는 말은 불가능을 강조하는데 쓰이는 상투어이지만, 어머니의 바늘구멍은 낙타부대 1개 사단이라도 지나갈 만큼 넓고 크지 않았던가. 한 가족의 의식주가 모두 거기에서 나왔으니까 말이다. 바늘구멍의 역설이, 모성의 위대함과 겹쳐지면서 묵직한 감동이 터져나온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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