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날 종일
바위에 귀대고 듣는
말매미 울음
유안진의 '하이쿠식 피서'
■ 말복날은 더위에 지치는 날이다. 사람은 풀어져 나자빠져 있을 때라지만 매미는 몹시도 마음이 바빠지는 날이다. 여름은 다 가는데 아직 사랑의 신방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벽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죽도록 운다. 그중에 말매미는 멜로디도 없이 그저 셰에에에에 끝없이 운다. 종일 말매미 소리만 귀에 넣었으니 귓속에 소리가 가득 차지 않았겠는가. 소리가 거듭 되면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귀에 든 소리를 좀 빼고 다시 듣는 건 어떨까. 따뜻한 바위에 귀대는 일은 귓속에 물이 들어갔을 때 빼는 민간요법이다. 어린 시절 그랬던 기억이 있다면 따뜻한 물이 흘러내리면서 막혔던 소리가 뻥 뚫리던 추억이 따라오리라. 비록 물장구 치지는 않았지만 바위에 귀를 대는 일만으로도 어린 날의 피서가 떠오르는 것이다. 더위가 물러갔으면 좋겠다 싶은 내 입장에서야 그 더위의 끝을 붙잡고 있는 매미 소리가 달가울 리 없지만, 절박한 연애 한 자락 치르지 않으면 생애 종치는 매미 입장에서야 남아있는 더위가 얼마나 고맙고 좋을 일인가. 말매미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그 소리를 콘서트의 연주처럼 들어줘야 한다. 짧은 시가 담은 너무나 기나긴 매미울음 소리, 그리고 그 울음소리를 가만히 담아주는 너무나 넓고 어진 귀. 그 멋진 귀명창을 만났는가. 이 짧은 시 속에서?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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