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더 기다려 줍시다./더 많이 사랑했다고/부끄러워할 것은 없습니다.//더 오래 사랑한 것은/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요행이 그 능력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부디 먼저 사랑하고/많이 사랑하고/더 나중에까지 지켜주는 이 됩시다.
김남조의 '가고 오지 않는 사람'
■ 사랑이란 마음을 꺼내는데 에너지나 비용이 드는 것은 분명 아닌데, 우린 이걸 꺼내는데 몹시 망설이고, 잘못 꺼내지 않을까 걱정하고, 남보다 많이 꺼냈을까 조바심친다. 사랑은 하나이며 그 하나의 사랑이야 말로 고귀한 순정이라는 학습 때문일까. 사랑을 헤프게 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라. 사랑이란 마음의 한 갈래이고 마음이라는 것이 갯수로 나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용량이 있어서 다 쓰면 더 이상 쓸 게 없는 것도 아니니 그리 아낄 것도, 또 마음을 주었다고 손해본 느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마음은, 마음을 먹기만 하면 혹은 마음을 내기만 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마음이 나오지 않는가. 그야 말로 화수분이다. 다만 그 마음을 잘 쓰고 싶은 것은 마음 자체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이니, 그런 애초의 취지만 잊지 않으면 된다. 김남조는 '마음 사용 설명서'를 여기 간결하게 내놓았다. 사랑이란 서로 저울의 무게가 맞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지만, 조금 기울어지면 어떤가. 기울어졌다고 그걸 만회하려 서둘러 냉담이나 분노나 질투를 꺼낼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대로 가만히 기다리며 사랑하자는 제안을 한다. 먼저 사랑하고 나중까지 사랑하고 내내 많이 사랑하는데만 마음을 기울여라. 햐~.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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