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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남조의 '밤 편지' 중에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1초

편지를 쓰게 해다오//이날의 할 말을 마치고/늙도록 거르지 않는/독백의 연습도 마친 다음/날마다 한 구절씩/깊은 밤에 편지를 쓰게 해다오//(......)//눈 오는 날엔 눈발에 섞여/바람 부는 날엔 바람결에 실려/땅 끝까지 돌아서 오는/영혼의 밤외출도/후련히 털어놓게 해다오//어느 날 밤은/나의 편지도 끝나게 되겠거니/가장 먼/별 하나의 빛남으로/종지부를 찍게 해다오


김남조의 '밤 편지' 중에서


■ 언제부터인가 편지 쓰는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누군가에게 밤 늦게까지 편지를 쓰고 그것을 우체통에 넣으며 느꼈던 애틋한 기분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되어, 편지를 받을 사람을 생각한다는 일. 그 편지가 가는 동안의 설렘과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이 다시 마음을 내는 시간을 거쳐 답장이 날아오고 있는 동안의 궁금함과 애틋함. 보내온 편지를 뜯을 때의 달콤한 긴장.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행간까지 가만히 음미하는 때의 기쁨과 슬픔. 김남조의 밤 편지는, 편지 쓰는 행위에 관한 아름다운 탐닉입니다. 골수에 말하게 되는 걸, 고쳐 못쓸 유언처럼 기록하고 싶은 그 마음. 이 시간이 먼 다른 시간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글에 찍을 마지막 종지부는 별 하나의 빛남이라니, 멋지지 않은지요. 우리가 숨을 그치는 날에 찍는 마침표, 별 하나. 그 마지막 편지를 보내며 우린 우리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리니.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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