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엇모리 자진모리 휘몰아보아//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헛 때리면 만갑이도 숨을 고쳐 쉴 밖에//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 쯤은 지나고/북은 오히려 컨닥터요//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떡 궁! 정중동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김영랑의 '북'
■ 김영랑의 진면목을 이 '북'에서 듣는다.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는 판소리 장단으로 느린 것에서 빠른 순서로 놓았다. 빨라지는 호흡을 따라 휘몰아치는 맛을 풀어놓은 것이다. 앞에는 소리하는 사람이 있고, 시인은 북을 잡았다. 명창과 명고가 숨결이 꼭 맞는 일이야 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얼마나 시원한 일인가. 소리가 없다면 북은 가죽일 뿐이지 않겠는가. 북을 헛때리면 판소리 명창 송만갑(1865-1939)도 박자를 놓칠 수 밖에 더 있겠는가. 북은 노래의 귀를 잡고 노래의 신명을 돋우며 노래의 자리를 잡아주는 지휘자가 아니던가. 명창을 지휘하는 명고인데, 짧고 빠른 가락은 연주하지 않고 그저 넘겨버린다. 왜 그럴까. 심장이 저 홀로 뛰며 마음 북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눈앞의 북을 두드리지 않아도 신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몰입의 경지를 표현한 절묘한 대목. 떡 궁, 한번 치니 고요 속에 움직임이 일어나고 소란 속에 고요가 파묻혀 있는, 성숙한 흥취를 이룬다. 그걸 영랑은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간다고 표현했다. 아! 맛지고 멋지지 않은가. 가을남자의 북소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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