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의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1593년) 7월에 한산섬으로 진을 옮겼다. 1597년 2월26일 파직될 때까지 이곳에서 근무했다. 한산으로 진을 옮긴지 3년째인 1595년 8월15일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날 밤 으스름 달빛이 수루를 비추는데 잠을 들지 못하여 시를 읊으며 밤을 새웠다." 그의 나이 51세 때이다. 당시 왜군은 이순신의 조선수군에 바다를 빼앗기고 견내량 동쪽 해안으로 출몰하며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남은 왜적을 섬멸하기 위해 육군과 수군이 협공을 해야 한다고 조정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쟁 중의 추석날. 달빛에 어린 바다와 섬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착잡해짐을 어찌할 수 없다. 그의 시름은,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고심과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곰내(여천시 웅천리)에 피난 중인 노모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문득 갈잎으로 만들어 부는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왜병이 아닌 북쪽 호병의 피리가 들리니, 조정이 계신 북에서 소식이라도 오려는가. 아니면, 모친의 마음이 저 흐느낌 속에 흘러들어 내 귀로 오는 것인가. 왜란의 바다를 피로 물들여 평정하던 조선 맹장의 서슬 속에 스며든, 피리 소리 한 가닥. 이 시가 심금을 흔드는 것은 그 처연한 반전에 있다. 이순신이 그리운 어머니를 잠시나마 만나는 것은 이듬해 윤8월 전라좌수영을 순시하는 도중에서였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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