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그치고 무지개가 떴다/죽은 개를 묻으러 무지개 너머로 갔다//어젯밤 내 얼굴을 핥던 개/잠 속에서도 내 얼굴을 핥았다//깊은 밤/내 혀는 한없이 길어져/낯선 얼굴을 핥았다/
침이 흥건했다//죽은 개를 묻으러 무지개 너머로 갔다/돌아오지 않았다
강성은의 '아름다운 계절'
■ '무지개같은 아름다운 시'라고 내가 말하자, 우스개쟁이 동료는 "무지 개같은?"이라고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개를 묻는 일과 무지개는 아무 연관이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패총(貝塚)을 조개무지라고 말하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냥 넘어갈 일도 아니다. 개무덤은 개무지(개묻이)가 되고 그건 무지개와 닮아있지 않은가. 밤에 내 얼굴을 핥던 개가 죽은 뒤에도 찾아와 꿈 속에서 내 얼굴을 핥는다. 이건 뭔가. 해몽을 할 것도 없이 영락없는 개꿈이다. 여기서 시인은 슬그머니 반전을 준다. 꿈 속에서 개처럼 길어진 혀로 누군가의 얼굴을 핥고 있는 존재는 자신이고, 핥아주는 그 얼굴은 낯설다. 꿈에서 개가 된 사람의 고백이다. 흥건하게 고인 침은 성애(性愛)처럼 간절하지만 사랑은 딱 거기까지뿐이다. 다시 반전. 죽은 개를 묻으러 무지개 너머로 간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은 죽은 개였기 때문이다. 개가 되어 열심히 핥아준 그 낯선 얼굴은 무지개 너머로 돌아가버렸지만 개는 개무지 속에 들어갔기에 다시 무지개 저쪽으로 갈 수 없었다. 무지 개같은 이야기인가? 그 주검이 되어, 개무지가 되어 돌아오지 못한 저쪽. 무지개 너머엔 과연 행복이 있는가. 장난끼가 없진 않지만 아픈 역설이 있는 인간과 개의 번신(飜身)이다. 무지개같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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