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내려오는데/리기다소나무에서 제법 굵은 삭정이가/한 걸음 앞쪽에 툭, 떨어진다/하마터면 머리에 맞을 뻔했는데/청설모 짓인가 해서 올려다보니 자취마저 없다//나무가 지나가는 내게/말없이 말을 건넨 것,/오래 견뎌온 고통을 호소하는 몸짓 같았다//나무라고 왜 괴로움과 슬픔 없겠는가,/그건 나무가 썩어가는 제 팔 하나를 스스로 잘라내가면서 말을 건넨 것/(......)//나무는 끝내 아무런 말이 없고,/습기 머금은 공기만 무겁도록 숲을 채우고 있었다
엄원태 '나무가 말을 건네다' 중에서
■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영혼을 지니고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영혼이 수많은 몸 속에 깃들어 거주하는 것이며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큰 영혼은 영생을 부여받은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 짐승도 새도 혹은 물고기도, 벌레도 모두 우리 영혼 속에 이미 깃들어있는 또다른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무는 인간에게 오랫 동안 무슨 말을 해왔으며 인간은 외국어처럼 그 말들을 듣고도 흘려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무삭정이가 눈앞에 갑자기 떨어지면서 말을 건넨 것. 시인은 나무의 말을 얼핏 알아들을 듯 했지만 사람의 귀에 갇혀 있는지라 그 문장은 놓쳤고 뉘앙스만 건졌다. 늙은 나무의 괴로움과 슬픔이 저릿하게 전해져온 것이다. 평생을 기다렸다가 문득 털어놓는 간결한 한 마디. 시인은 그러나 그 소통의 나머지를 듣지 못하고, 숲을 떠도는 거대 영혼이 내는 침묵의 눅눅한 공기만을 들이킬 뿐이다. 나무와 사람 사이, 혀를 붙드는, 삼엄하고 치명적인 정적의 노이즈만 흐르는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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