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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심보선의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중에서

시계아이콘00분 43초 소요

전날 벗어놓은 바지를 바라보듯/생에 대하여 미련이 없다/이제 와서 먼 길을 떠나려 한다면/질투가 심한 심장은 일찍이 버려야 했다/(......)/사랑을 나눈 침대 위에 몇 가닥 체모들/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하는 사물들 간혹/비극을 떠올리면 정말 비극이 눈앞에 펼쳐졌다/꽃말의 뜻을 꽃이 알 리 없으나/봉오리마다 비애가 그득했다/그때 생은 거짓말투성이였는데/우주를 스쳐 지나는 하나의 진리가/어둠의 몸과 달의 입을 빌려/서편 하늘을 뒤덮기도 하였다/그때 하늘 아래 벗은 바지 모양/누추하게 구겨진 생은/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였다/장대하고 거룩했다


심보선의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중에서


■ 빈센트 갈로가 만든 2003년 영화 '브라운 버니'. 칸느영화제에서 공개되어 관객과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은 작품이다. 눈에 띄는 사건도 없이 주인공 남자의 운전만, 작품의 4분의3 동안 계속되는 영화이다. 막판에 그간의 지루함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이 사내가 겪었던 비극이 밝혀지면서, 그 상처받은 내면 속으로 접속이 된다.. 심보선의 시를 읽으며 계속 갈로의 '브라운 버니'가 떠올랐다. '밤이 오면 고대 종교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곧 사라졌다 사랑을 나눈 침대 위에 몇 가닥 체모들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하는 사물들 간혹 비극을 떠올리면 정말 비극이 눈앞에 펼쳐졌다'라는 대목은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선명하다. 임신 상태로 겁탈당하다 죽은 연인을 못잊고 방황하는 그 주인공의 마음이 되어 이 시를 읽어보라. 사회학자이자 시인인 심보선의 표현을 입은 언어들은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어보이는데도 놀랍도록 새롭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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