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뒤 곤달걀집에서/노란 부리를 내민 채 숨을 거둔/어린 병아리를 만났다 털을 뽑을 수가 없었다/도저히, 맛소금을 찍을 수가 없었다//곡식 멍석에 달기똥 한 번 갈긴 적 없고/부지깽이 한 대 맞은 적 없는 착한 병아리,/언제부터 이 안에 웅크리고 있었을까//물 한 모금 마셔본 적 없는 눈망울이/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이정록의 '부검뿐인 생' 중에서
■ 곤달걀은 '곯은 달걀'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달걀 속에서 닭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돌아간 어린 주검이다. 사람들은 이걸 건강식이라면서 쪄서 맛소금에 찍어 먹는다. 그냥 달걀과 곤달걀 사이, 어느 지점에서 우리가 함부로 군침을 흘리기 민망한 경계가 생겨나는 것일까. 아마도 닭이 형상을 막 갖추는 그때가 아닐까. 우리가 배 속에 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설레기 시작하는 바로 그때 말이다. 이정록의 절절한 감정이입이 피어나는 지점도 그 '어린 형상'에 있다. 차라리 지상에 내려와 하루 햇볕이라도 봤으면 그래도 덜 억울할 일이다. 곡식 멍석에 '달기똥'(충청도에선 닭똥을 그렇게 쓴다 한다. 경상도에선 달구똥이다) 한 번 갈긴 적도 없는데, 엉뚱한 데 쏘다닌다고 부지깽이로 맞아 본 적도 없는데, 물 한 모금도 저 부리로 마셔 본 적 없는데, 저 어린것을 왜 데려갔는가. 육체가 쓰일 기회도 없이, 바로 주검이 되어 부검으로 들어가는 이 기막힌 곤달걀의 생. 자글자글한 발가락과 눈시울의 주름을 보면서 시인은 진저리를 친다. 달걀 속 제자리에서 진저리를 치다 바들바들 돌아간 목숨아. 깨진 창문의 은박지 꽃은 '곤달걀 잔혹동화'를 전경화(前景化)하며 이 비극을 천천히 거둬 가는 엔딩자막같이 피어오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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