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가 이제 횡단한 뒤/해협이 천막처럼 퍼덕이오.//......흰 물결 피어오르는 아래로 바둑돌 자꼬자꼬 나려가고,//은방울 날리듯 떠오르는 바다종달새......//한 나절 노려보오 훔켜잡아 빨간 살 뺏으려고./미역잎새 향기한 바위 틈에/진달래꽃잎 조개가 햇살 쪼이고,//청제비 제 날개에 미끄러져 도-네/유리판 같은 하늘에./바다는 - 속속드리 보이오./청댓잎처럼 푸른//바다//(......)
정지용의 '바다1' 중에서
■ 이 바다는 정지용이 일본 유학시절에 본 바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1923년 4월에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할 때까지 일본에 있었다. 이 시는, 정지용이 살아돌아와 영화 제작을 했다면 거장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고래같은 파도가 들이치고 간 뒤 흰 물보라가 피어오르는 해변에선 몽돌들이 잘그락잘그락 물에 쓸려내려가고 있다. 거친 바다를 해안은 그렇게 쉽게 누그러뜨려 평화로움을 변주해낸다. 바다는 전쟁터같거나 말거나, 해변에선 작은 종달새가 한 나절 내내 우뚝 서서 뭔가를 노려보고 있다. 시인의 카메라워크가 백만달러짜리다. 정지용은 종달새의 시선을 먼저 비춘 뒤 천천히 미역냄새가 나는 바위틈으로 카메라를 돌린다. 거기 빨간 속을 드러내놓고 있는 조개 하나가 보인다. 그게 먹고 싶었구나. 내가 이 대목에서 주목하는 것은, 지용이 동원한 비유들의 '주소'같은 것이다. 주로 직유법으로 표현한 것들. '천막처럼', '바둑돌', '은방울 날리듯', '진달래꽃빛' '청댓잎처럼'이 그것인데, 이것은 대개 그가 가슴 속에 간직한 조선의 추억들이 아닌가. 정겹게도.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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