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이경옥 동구제약 회장
-藥장사는 술 마셔야?…맥주 한잔 못 마시지만 여성의 섬세함과 칼같은 약속이행으로 소통
-남편 건강 악화, 50살 넘어 제약업체 첫 여성CEO 변신…실적보다 직원부터 챙겨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제약업계는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있는 보수적인 업계로 손꼽힌다. 접대 문화 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면면을 봐도 의·약학 등 관련 분야를 공부한 남성 리더가 주도하고 있다.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온 유학파도 더러 있다. 여성 CEO는 '가물에 콩 나듯' 보기 힘들다. 20년 전에는 더욱 그랬다.
1일 서울 고척동 본사에서 만난 이경옥(74) 동구제약 회장은 제약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CEO다. 전업주부에서 제약사 CEO로 변신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승부사적 기질은 또 얼마나 강할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50㎝가량 되는 자그만 키에 섬세하고 자상한 '마음 경영'을 강조하는 우리네 어머니 모습 그대로였다. 이경옥 회장의 생존비결이었다.
◆전업 주부에서 경영자로…"주경야독하며 나를 채웠죠"= 이경옥 회장이 회사 경영에 뛰어든 건 지난 1992년, 남편 고(故) 조동섭 회장의 병환이 깊어지면서다. 당시 이 회장은 전업주부였다. 가정에만 충실했던 그녀는 별안간 쉰이 넘은 나이에 250여명의 직원 생계를 떠안아야 했다. 제약업계에서 여성 CEO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과연 회사를 잘 이끌 수 있을까"라는 우려와 걱정을 할 겨를도 없이, 이 회장은 회사를 이끌기 위해 늦깎이 경영 수업을 병행했다. 일일이 각 부서별 브리핑을 받으며 업무를 파악해가고, 중앙대학교 중소기업최고경영자과정, 이화여대 경영대학원 여성최고위과정,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최고경영자과정을 다니는 등 뒤늦게 경영학 공부를 두루 섭렵했다. '주경야독'으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 것. 이 회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주저앉지 않고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초점을 맞추니까 끊임없이 배움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답이 나오더라"고 떠올렸다.
'좌충우돌' 경영을 시작한지 5년 후인 1997년, 남편의 별세와 IMF 외환위기라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거래처가 야반도주해 수도 없이 의약품 판매 대금을 떼였고 눈물을 머금고 230~240명에 달하던 직원을 187명으로 줄였다. 병·의원, 약사, 도매처 등과의 소통도 느슨해지고 업계 흐름을 따라가기 벅차,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 의약분업 등을 틈타 고속 성장한 다른 제약사에 비해 반사이익도 누리지 못했다.
이 회장은 과거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비뇨기과와 피부과에 집중하되 시장 규모가 큰 내과 영역에서 발을 넓혀가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마음 경영'이 디딤돌이 됐다. 동구제약을 연 매출액 700억대원의 튼실한 제약사로 키워놓았고, 아들 조용준 사장으로의 2세 경영 체제 전환도 무탈하게 끝마쳤다. 그녀는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권위를 내세우는 리더십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직원들을 보듬고 직원들을 믿고 업무를 맡겼더니 성과가 나타났다"며 "2011년에는 피부과 분야에서 처방건수 1위도 했다"고 웃어보였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기차"= 이 회장은 직원들을 살뜰하게 챙기기로 유명하다. 직원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엔 손 글씨로 적은 축하 카드를 건넨다. 어떤 직원은 회장실을 들러 감사인사를 하고, 답례로 도서상품권을 전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이 오가니 직원들과의 유대가 한층 단단해졌다. 모두 내실이 먼저라는 믿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이 회장은 "회사 규모를 키우는 것에 앞서 직원 모두 동구제약이 좋아서 즐겁게 일해야 효율성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2004년에는 직원들을 하나로 모아줄 사원상(社員象)과 사가(社歌)도 만들었다. '회사의 발전은 나의 발전, 운명을 같이하자'로 시작되는 8가지 사원상과 사가의 노랫말은 이 회장이 직접 썼다. 동구제약의 정신을 임직원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경영 철학 역시 그녀 특유의 경영론(論)에서 비롯된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을 나란히 난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에 비유했다. 기차의 한 량(팀)이 여러 개 붙어 기차(회사) 하나가 돼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듯, 부서 이기주의를 버리고 소통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골인한 지점을 향해 달리던 기차에서 차량 하나가 자기 잘났다고 삐져나오면 전체가 달리지 못한다"며 "우리는 레일 위를 달리는 각 팀이 모였으니 화합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듯이, 공동체는 함께 가야 한다"며 "서로 이해하고 나누고 힘을 모을 때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술을 꼭 마셔야 하나요?"…여성의 강점을 살려라= 우리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할 때 마주하는 벽 중 하나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회식(접대)문화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똑같이 겪는 불편한 자리다. 이 회장도 남성 위주인 제약업계에서 사업을 하려면 술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회장은 지금도 맥주 한 잔을 못 마신다. "술 마시고 마음 속 깊이 있는 말을 툭 터놓는 일은 적겠지만 (술을)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업무적으로 이야기하면 된다"는 게 이 회장의 오래된 생각이다.
대신 어머니와 같은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직원들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입사를 환영한다"고 말한다든지, "아기는 잘 커?", "왜 매출이 이래. 잘 해"하며 어깨를 툭 쳐준다거나 하는…. 만나는 직원 마다 격려하며 다독였다. 그렇다고 마냥 부드럽진 않았다. 지적할 땐 칼 같이 했다. 이 회장은 "2세 경영체제가 완성된 지금도 영업회의와 임원회의, 부서장 회의에 들어가 회사 전반을 익힌다"면서 "회의를 쭉 둘러보고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하고 회의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등의 조언을 해준다"고 말했다.
미래의 CEO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같은 맥락의 조언을 건넸다. 이 회장은 "여성들은 공동체를 조화롭게 이끌어가고 섬세하지만 멀리 보고 원대하게 가는 건 남성 보다 조금 약한 측면이 있다"면서 "이 둘이 조화되면 금상첨화다.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나가며 함께 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동구제약은 어떤 회사…
동구제약은 지난 1970년 창립된 중견 제약사로 올해로 창립 43주년을 맞았다. 과거부터 피부과와 비뇨기과 영역에서 강했다. 이 회사는 스웨덴 AB세르넬과 기술 제휴를 맺고 생산 중인 전립선 치료제 '쎄닐톤'과 생균제제 '벤투룩스' 등을 주력으로 전문의약품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지난 2011년에는 피부과 영역에서 처방건수 1위도 했다. 특히 지난 2007~2010년 4년간 연평균 30% 성장해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바이오 분야를 새 먹잇감으로 정하고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국내 제약시장이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타격을 입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우기 위해 현재 70%인 의약품 비중을 내년 50%로 줄이는 대신 바이오, 헬스기기 등에 눈을 돌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내년 1월 초 사명을 '동구바이오제약'으로 바꾸고 코스닥 시장 상장을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상장을 통해 수혈된 자금은 바이오 의약품 쪽으로 돌릴 생각이다.
동구제약 관계자는 "약가인하 등으로 제약업계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하면서 국내 제약시장의 대세가 바이오, 줄기세포 치료제로 넘어간 상황"이라면서 "후발주자지만 여러 줄기세포 업체와 협업 논의를 진행하며 틈새시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동구제약의 지난해 매출은 701억원이다. 올해는 85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경옥 회장은…
▲1939년 12월 출생 ▲1959년 2월 인천여자고등학교 졸업 ▲1993년~1999년 동구제약 부사장 ▲1994년~ 2006년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 ▲1997년~2005년 동구제약 대표이사 ▲2004년 백만불 수출의 탑 수상 ▲2005년 12월~ 동구제약 회장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세상을 바꾸는 W리더십]"운명을 같이" 사가 노랫말 쓴 회장님](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3100111363755397_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