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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과 자정, 망각의 악순환에 빠진 출판시장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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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지난달 중반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가 베스트 셀러1위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다.


두 책의 성공은 공격적인 마케팅에 기인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두 작가는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워낙 대형작가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을 통한 출판마케팅은 수많은 군소출판사들을 아연 실색케 한다. 선인세 18억원, TV 광고 등 출판계 초유의 물량 투입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최근 하루키와 조정래의 소설은 각각 100만권, 50만권 판매를 돌파하고도 지칠줄 모른 채 팔려 나가고 있다.

가뜩이나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출판업계는 "이제 시장이 철저하게 '자본과 힘'의 지배를 받게 됐다"며 "콘텐츠의 힘보다는 마케팅의 힘이 '상업적 성공'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작은 출판사, 틈새시장을 겨냥한 출판사, 전문 학술 출판사가 살아날 구멍이 더욱 막혀버렸다"고 볼멘 소리를 낸다. 또 "돈을 퍼부으면 되는 판국에 더이상 사재기조차 할 필요조차 없어졌다"고 하소연한다.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다. 잊을만 하면 출판계는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을 개선하자며 반성과 자정을 반복적으로 외쳐댄다. 지난 봄, 한 유명 출판사의 사재기 논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곤 금새 잊어버린다. 그리곤 반성과 자정, 망각의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시장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은 언제나 '찻잔속의 태풍'에 그친다.

지금은 베스트셀러가 '가장 좋은 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잘 팔린 책으로 통용된다.즉 베스트셀러 목록은 상업적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일 뿐이다. 매주마다 출판사들은 출판단체 및 유통회사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목을 멘다. 시장과 독서 동향을 분석하느라 야단법석을 떤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 또한 유별나기는 마찬가지다.독자들의 책 선택은 장르, 작가, 출판사 등 다양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를 추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출판사업자들도 늘상 '좋은 책과 잘 팔리는 책'이라는 고민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사업을 영위한다. 때론 사재기해서라도 베스트셀러 상단을 차지하고픈 욕망을 피하지 못 한다. 따라서 베스트셀러가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고 지식과 정보의 방향을 설정해 주지 못하는 까닭에 '베스트셀러' 집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거세다.


실례로 지난 5월 검찰 수사를 받은 출판사 '자음과 모음'의 사재기 논란은 빙식의 일각이다. 당시 논란이 됐던 책은 황석영 작 '여울물 소리', 김영수 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백영옥(39) 작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등 세권이다. 급기야 출판사 대표가 사임하는 등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에도 자정의 목소리는 예외없이 터져 나왔다.


출판사의 사재기 방식으로는 ▲ 아르바이트생 및 지인 동원해 서점에서 은밀히 사들이는 수법 ▲ 파워 블로그를 매수한 노이즈 마케팅 ▲ 사재기 대행 브로커 활용 ▲ 출판사가 서점계좌에 입금 후 도서 판매분으로 처리하는 변칙 회계 등이 꼽힌다.


이에 지난해 출판업계와 서점업계가 비용을 절반씩 부담, 1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내부고발자에게 포상하는 북파라치를 실시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적발된 사례는 없다.


출판 시장 불황이 깊어지면서 베스트셀러 상단을 차지하기 위한 부정 행위는 더욱 만연하다는게 출판업계의 설명이다. 게다가 각종 덤핑 할인, 선인세, 원플러스원 할인, 공격적인 마케팅 등 출혈을 마다하지 않는다.


출판사의 과당 경쟁이나 베스트셀러 위주의 독서 관습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정작 독자들이다. 대중적 취향의 베스트셀러 읽기는 출판 편중, 양극화 심화, 출판생태계 붕괴 등의 악순환을 낳는다.


김산환 꿈의지도 대표는 "베스트셀러 집계는 시장 쏠림을 강화시키고 수많은 양서들을 압살한다"며 "이는 단순히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의 개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아예 베스트셀러 집계를 폐지하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정부나 출판단체, 관련 전문가들도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태다.


현재 대형 출판사 30여개가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편중이 심각하다. 이에 인문사회과학이나 전문 학술 출판 등 틈새시장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일부에서 베스트셀러 집계를 현실적으로 폐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출판 불황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출판 지원, 산업 육성책이 필요한 단계다. 베스트셀러 집계 폐지는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으며 근본적인 치료책이 아니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를 완전히 배격하기 어려운 마당에 여기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황인석 출판평론가의 의견이다. 황 평론가는 "독자들이 문화적 안목을 갖고 다양한 양서를 읽어야 시장이 산다. 시장의 다양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독서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굳이 개선하고자 한다면 장르별로 상위 20, 30여개를 뽑아 순위를 정하지 않고 발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독자들의 독서 행위에 대한 지적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트렌드만을 쫓는 독서 습관 대신 양서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사실 직장인들은 책 한권 읽기도 만만치 않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까운 시간에 양서를 골라 읽을 줄 아는 지혜가 절실하다. 양서를 읽는 독자가 많아지는 것만이 시장의 다양성을 살리고, 개선할 수 는 유일한 방안이기도 하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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