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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9장 어둠 속의 두 그림자(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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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9장 어둠 속의 두 그림자(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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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의 마음이 하림이 자기보다 더 솔직하고 진실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바람 부는 밤 불편한 다리를 끌고 그들 뒤를 미행했고, 또 이렇게 상처 받은 짐승처럼 절망적으로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무관심이거나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일시적 집착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림은 문득, 그런 운학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남녀 사이의 감정에 끼어든다는 만큼 바보스러운 짓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기가 방해물이 아니란 사실만큼은 알려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가 분노하고 있는 건 하림이 아니라 남경희 그녀인지도 몰랐다. 자기에게 곁을 주는 대신 낯선 사내와 나란히 밤길을 걸어가는 그녀에 대한 분노인지도 몰랐다.


"나는 차라리 두 분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이건 나의 진심입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본 사람은 이장님이었어요. 이장님은 제게 잘 해주셨어요." 하림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사실 두 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요. 알 필요도 없구요. 하지만 그녀는 어쩌면 지금쯤 이장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지도 몰라요. 아침에 윤재영 씨 고모할머니가 난리를 피울 때 오죽 한 사람 이장님만이 그녀를 감싸주셨지요. 그녀도 그걸 알고 있을 거예요. 사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고 구경꾼에 불과해요. 만일 이장님이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나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정말이예요."


"흥. 필요없어. 당신 도움 따윈 필요없다구!" 운학이 뒤로 돌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말 속에 담겨 있던 날선 기운은 처음보다 많이 뭉그러져 있었다. 뒤로 돌아선 운학은 다시 둑길을 따라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하림 역시 그의 등을 보며 그와 일정한 보조를 맞추며 아까처럼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새 바람은 조금 잦아들어 있었다. 어두운 저수지 쪽에서 밤새 우는 소리가 길고 처량하게 들렸다. 한동안 하림도 운학도 말이 없었다. 기우뚱거리는 운학의 어깨가 더욱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사실 내게 관심도 없어." 이윽고 운학이 말했다.


"윤재영이도 그랬고, 그녀도.... 언제나 내겐 원사이드였지. 이렇게 다리 하나가 없어지고 나자 세상은 모두 내게서 얼굴을 돌려버렸어. 멀쩡한 놈들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병신인 나를 좋아해 줄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는 앞을 보고 걸으며 자학적인 말들을 뱉어내었다. 그의 말투가 다시 존칭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다들 내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지. 나도 알아요. 나도 알지만.... 내 마음인들 내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겠소. 멀리서 그녀가 걸어오는 걸 보면 가슴이 저절로 소리내어 뛰곤 해요. 이 나이에 말이우. 그래선 안 된다고 다잡으며 술도 마시곤 했지만 술이란 놈이 들어가면 더더욱 그녀가 눈앞에 얼쩡거리지. 환장할 정도로 말이우." 그의 걸음이 잠시 비틀거리는 것 같았다.


"사실 난 그녀가 이 동네를 떠날까봐 두려워요. 그녀 아버지 영감이야 어찌 되었든 난 그녀가 가까이 사는 것만 봐도 좋을 것 같애.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나완 달라요. 다들 그녀 부녀를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어. 난 다 알아요. 이 동네 노인네들이 내가 그녀 뒤를 쫓아다니는 걸 몹시 못마땅해 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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