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환헤지 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로 손해를 본 기업이 피해액을 배상하라며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내 1심에서 이긴 첫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자 피해를 본 기업들이 무더기 소송을 내 현재 270여건이 진행 중이고 대법원에만 40여건이 계류돼 있는 중에 나온 판결이라 주목된다. 키코사태와 관련해선 각 사건마다 판결의 승패가 엇갈리고 있으며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고법 민사16부(부장판사 최상열)는 반도체 설계업체 엠텍비젼이 부당한 계약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8월 "씨티은행이 손해액의 70%를 배상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바 있다. 이 판결은 키코 피해기업이 승소한 사실상의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전 판결에선 은행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보거나 은행의 책임을 피해액의 50% 이하로만 물었다.
1심 재판부는 거래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은행의 책임을 인정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계약을 신중히 체결하지 않은 기업의 책임을 더 무겁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엠텍비전의 과실도 손해발생의 원인이 됐고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며 씨티은행의 책임을 30%로 낮춰 잡았다. 또 재판부는 손해배상금이 대출금과 상계된다는 은행 측 항변을 받아들여 "손해배상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엠텍비젼은 키코사태로 발생한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씨티은행으로부터 대출한 수십억원을 갚지 못한 형편이어서 실제로는 한 푼도 배상받지 못하게 됐다. 또 1심에서 이긴 후 가지급받은 5억원도 돌려줘야 할 상황이다. 이 기업은 지난 2월 회생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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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Knock-In, Knock-Out)란 기업과 은행이 특정 기간 동안 환율과 그 변동의 상ㆍ하한을 정해놓고 계약하는 통화옵션 상품으로, 환율이 그 구간 안에서 변동할 때는 가입자가 약정환율을 적용받아 이익을 내는 반면 환율이 그 범위 밖에서 움직이면 피해를 입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른바 '키코사태'로 수출 중소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국회 국정감사 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말 기준으로 110개 기업이 부도,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키코 관련 소송은 현재 각급 법원에서 270여건이 진행 중이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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