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엉뚱하게 지어지려는 매듭을 풀어야 한다. 기성용의 '항명 논란' 얘기다.
발단은 비공개 소셜네트워크(SNS) 계정이었다. 지난 4일 대표팀 감독을 향한 원색적 비난이 대중에 알려졌다. 전례 없던 상황은 당황을 넘어 분노로 이어졌다. 선수가 자인했고, 대한축구협회까지 '징계를 거론하면서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계속되는 갑론을박 속에 초점은 점점 흐려졌다.
협회는 10일 기성용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다. 그가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혔으며, 대표팀에서의 공헌과 업적을 고려해 징계위원회 회부 없이 엄중 경고 조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애당초 징계의 대상이기에 모호했다. 협회 운영 규정 13조 '선수의 의무'는 "대표 선수로 품위를 유지하고 선수 상호 간의 인화단결을 도모할 것"이라고 정의한다. 협회 징계규정 12조는 대표팀과 축구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선수에 대해 최소 1년 출전 정지부터 최대 제명까지의 징계를 명시하고 있다.
이번 사례의 경우, 두 규정에 비춰 어떻게든 징계의 명분은 만들 수 있으나 적합성이 문제였다. 사적 영역으로 여기던 공간의 '뒷담화'를 공적 수준으로 끌고 와 벌하는 셈인 까닭. 온당함의 여부는 보는 시선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결과는 뻔했다. '여론재판'과 '과유불급'의 태도가 충돌하며 논란만 재생산을 거듭했다. 결국 징계 없이 경고에 그쳤다. 사실상 '이 쯤에서 일단락하자'는 메시지의 면죄부처럼 여겨진다. 엉뚱하게도, 이를 두고 다시 여론과 협회, 대중과 언론이 싸우는 꼴이 벌어질 것이다.
▲'진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협회는 기성용이 사과했다고 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네덜란드에서 공만 차고 있는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별로 한국 내 상황에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기성용은 9일 논란의 중심에 있던 SNS 계정에 이석희 시인의 <누가 그랬다>란 시를 올렸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란 내용이었다.
다시 시끄러워질 조짐이 일자 그는 이 계정까지 삭제했다. 끝까지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동시에 중의적 텍스트를 던진 뒤, 보는 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다 발뺌하는 식의 예전 태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쯤 되자 기성용이 5일 발표한 사과문이 정말 직접 쓴 것인지, 소속사의 대필인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치기 어린 저의 글로..."라던 그가 불과 나흘 만에 다시 치기가 엿보이는 행동을 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에게 필요한 두 글자는 치기나 상처가 아닌 '사과'나 '자숙'이 아니었을까.
언뜻 온라인상에서 기성용에 대한 논란은 비행을 저지른 연예인에 대한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연예인에 대한 성토는 일종의 가십일 뿐이다. 단순한 입방아란 뜻이다. 프로축구 선수 기성용이 저지른 일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국가대표 기성용'이었다.
포르투갈 출신 지도자 주제 무리뉴 감독은 2010년 모국의 부름을 받았다. 자국 대표팀 사령탑을 제안 받은 것. 당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었던 그는 고심 끝에 이를 고사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국가대표는 단순한 프로축구 선수가 아니다. 그들은 포르투갈을 위해 싸우도록 선택된 공인이다. 그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은 다른 포르투갈인들; 은행원, 택시기사, 정치인, 어부, 농부 등 보다 축구를 잘하기 때문이다. (중략) 국가대표는 클럽에서 뛸 때처럼 단순한 직업 축구 선수가 아니다. 다른 이들은 할 수 없는 일. 즉 축구장에서 포르투갈의 자존심과 환희를 지켜내는 임무를 맡은 공인이란 생각이다."
아울러 이렇게 덧붙였다.
"포르투갈을 대표해 경기장에 나서려는 포르투갈 사람들만큼은 -다시 강조하지만 난 그들을 '축구선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경기를 뛰는지, 모두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3년 전 무리뉴의 편지는 기성용에 대한 대중의 질타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 보여준다. 국가대표 기성용은 연예인이나 프로선수와 달리 공인이다. 그에게 환호하는 것은 대리만족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그들의 분신이다. 그들은 영혼과 마음을 바쳐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환희를 지키려는 국가대표를 보며 스스로를 느낀다.
그동안 기성용은 그런 기대를 저버린 행동을 축적해왔다. 6년 전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지'부터 최근의 '가만히 있던 우리(해외파)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됐고(중략) 그러다 다친다', '고맙다, 내셔널리그 같은 곳에서 뛰는데 대표팀으로 뽑아줘서' 등의 발언이 그랬다. 태극마크를 개인의 성취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에 진배없었다.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도, 기성용의 2014년 브라질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들의 생각도 같은 맥락이다.
징계 결정보다 '진짜 사과'가 먼저였다.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어쩌면 국민과 팬들 앞에까지 머리 숙일 필요도 없다. 그저 최강희 감독에게만 용서를 구하면 된다. 대표팀의 수장이었던 그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직접 만나든, 전화를 하던 진심으로. 그를 통해 이젠 자신에게 주어진 태극마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보는 이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논란을 가져갈 것도 없이, 기성용이 진짜 사과를 통해 국가대표로서의 진짜 자존심을 되찾길 바랄 뿐이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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