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장준우 기자] 100억원 짜리 위조 수표로 은행 감별기까지 속여넘긴 사기단이 전국에 공개 수배된 가운데, 이와는 별도로 총 800억원에 달하는 위조수표가 추가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국민은행에서 100억원의 위조수표를 현금화 한 사건과 별도로, 용의자들이 위조한 자기앞수표ㆍ유가증권ㆍ예금통장 등을 이용해 시중은행에서 800억원 가량을 추가로 인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경기지방경찰청이 먼저 검거한 용의자들을 바탕으로 수사한 결과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인출책인 박 모씨 등 8명을 붙잡았으며, 달아난 최 씨 등 3명을 추가로 쫓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전일 오전 시중은행과 외국계 은행의 국내 영업점 등에 위조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용의자들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위조수표를 현금화 해 해외로 도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정말 영화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황당해하고 있다. 일련번호까지 똑같은 위조수표가 감별기를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기 때문이다.
용의자들은 감별기를 통과하는 위조수표를 만들기 위해 먼저 1억원짜리 진짜 수표를 정상적으로 발급받았다. 그 뒤 수표의 금액을 100억원으로 바꾸고, 일련번호까지 똑같이 고쳐 국민은행 경기도 수원시 정자점에서 이를 현금화했다. 위조하기 위한 수표는 사채업자에게 7200만원을 지급하고 빌렸다. 이렇게 현금화 한 100억원은 다시 수십개의 계좌로 이체, 서울 곳곳의 은행에서 전액 인출했다.
수표 용지 자체가 1억원짜리 진짜 수표였던 만큼, 큰 문제 없이 감별기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련번호 역시 기존에 발행된 수표와 같았기 때문에 은행 직원이 육안으로 이를 감별하기는 매우 어렵다.
은행권은 추가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일단 사건의 시초가 된 국민은행의 수표가 들어올 경우 주의 깊게 보고 있다. 그렇지만 타행 수표의 경우 영업점에서는 사실상 진위 여부를 감별할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상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같은 은행에서 발행된 수표의 경우 일련번호, 고유무늬, 무색(無色) 잉크 확인 등을 통해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지만 타행 수표의 경우 일단 받아둔 뒤 은행연합회에서 교환하는 과정에서 위조수표인지를 알 수 있다"며 "현장에서 즉시 수표를 감별할 방법은 사실상 없고, 최소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 이와 같은 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2년 전에도 신한은행 이대역지점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위조수표로 20억원을 인출하는 사건이 발생해 2개월간의 수사 끝에 관련자를 검거한 바 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
장준우 기자 so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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