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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6장 봄비 내리는 아침(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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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6장 봄비 내리는 아침(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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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마요. 나도 오빠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미안해.”
“또.....?”
소연이 핀찬을 주듯 하고는 공허하게 웃었다. 그녀의 공허한 웃음소리가 하림의 폐부에 바늘처럼 박혔다.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상처를 주고만 꼴이었다. ‘미안해’, 라는 말은 ‘사랑해’, 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하림은 비로소 깨달았다. <러브 스토리>라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미안해’ 라고 하자, 여자 주인공이 말한다. ‘사랑은, 미안해 라는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하림은 소연에게 미안해, 라는 말 밖에 할 게 없었다. 욕망은 한 순간의 불길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끝나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하지만 사랑은 지속된다. 그에겐 소연과 지속될 수 있는 그런 감정을 가질 자신이 없었다.

그에게 지속되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은 오직 혜경이 밖에 없었다. 지난 겨울 눈 내리던 날, 노란 털장갑을 받고 행복해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불과 한달 여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고작 오천원짜리 털장갑에 감동 먹은 모습이라니....!
“혜경아, 사랑해.”
하림은 속으로 가만히 말했다. 그러자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지금 옆에 누워있는 소연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소연이란 존재 때문에 더욱 그녀가 그리운 지도 모른다. 혜경이는 그에게 첫사랑이었고, 꿈이자 상처였다.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더욱 아픈 사랑이었다. 그녀와의 사이엔 태수 형이 있었고, 태수 형이 남기고 간 딸 은하가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나의 집단, 가족이었다. 하림은 그저 그 변방을 어슬렁거리는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혜경이 그렇게 쉽게 떠나겠다는 말을 뱉었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가 어딘가. 얼마나 멀고 낯선 곳인데.... 후후. 생각하면 너무나 엉뚱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 역시 자기가 모헨조다로를 꿈꾸듯이 피난처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에겐 어쩌면 그곳이 똥철이 주장하고 다니던 내 마음의 망명정부 같을 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망명정부라.....후후.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하림의 머리 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스러졌다. 그러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깨어나 보니 소연은 가고 없고 창문은 어둑해져 있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저녁까지 내처 잤다는 말이었다. 더 이상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방은 은밀한 정적에 싸여있었다.
정적 속에서 소연이 머리칼에서 났던 샴푸 냄새 같은 게 은은하게 떠돌고 있었다. 그녀의 깔깔거리던 웃음소리와 피이거리며 아랫입술을 쑥 내밀던 모습도 떠올랐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소연은 또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
‘솔직히 말해서 그 여자분이 부럽네요. 좋은 남자와 결혼도 한번 하고, 또 하림 오빠처럼 멋있는 남자의 사랑도 받고....’
소연이 말했었다.
‘사실.... 하림 오빠한테 시를 배우고 싶다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았을지 몰라요. 여긴 무척 답답한 곳이거든요. 아무도 그런 이야기 해주는 사람도 없고....’


하지만 자기를 만난 것을 그녀는 금세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욕망도 상처를 남기지만 사랑은 더욱 큰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그녀가 없으니 비로소 하림은 그녀가 그리워졌다. 하림은 복잡한 마음으로 가볍게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때였다. 어둑한 창문 너머에서 따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운이 길게 따라붙었다. 마치 땅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분명 총소리였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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