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란 동물은 종종 상처만 남기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에겐 아직 혜경이란 존재가 있었다. 그녀는 하림에게 첫사랑이었다. 누군가에게 첫사랑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불의 인장을 찍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학창시절 교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이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떠올랐다. 이제 그 시절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었다. 내 모레면 그녀나 자기나 마흔 줄에 접어들 것이었고, 청춘의 초원 빛은 꺼져가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사방은 너무 조용하였고, 화실엔 소연과 자기 단 둘 뿐이었다. 하림의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다시 소연의 어깨와 엉덩이께로 향했다. 잠에서 깨어난 짐승이 시뻘건 눈을 뜨고 이빨을 드러내며 조용히 으르렁거렸다. 하림은 한숨을 한번 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있던 얇은 담요를 들고 자고 있던 소연의 뒤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그녀의 곁에 앉아서 잠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억제당한 욕망이 꿈틀거리며 그의 손을 이끌어 자기도 모르게 소연의 머리칼에 닿게 하였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손끝에 닿았다. 그는 깜짝 놀란 듯이 손을 거두고,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무엇이 그의 손을 잡았다. 소연의 가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하림 오빠.”
어느새 깨어난 소연이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못 생겼죠?”
“아니..... 왜?”
하림이 당황한 목소리로 얼른 대답했다. 소연이 하림의 손을 끌어 자기 뺨에다 대며 바로 누웠다. 눈길과 눈길이 닿았다. 그러자 하림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숙여 소연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였다. 입술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젖어있는 입술은 감미롭고 향기로웠다. 하림은 와락 소연을 끌어안고 혀로 닫혀있던 소연의 입술을 열었다. 소연이 입술을 벌이자 하림의 혀가 그녀의 혀를 찾아 입 안 깊숙이 들어갔다. 이와 이가 부딪혔고, 혀와 혀가 부딪혔다. 소연도 하림도 목마른 사슴처럼 서로의 입속을 탐색하며 따뜻한 샘에 목을 축였다.
“아....”
소연이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코에서 단내가 풍겨나왔다.
하림의 손이 소연의 세타를 젖히고 브라자 속으로 손을 넣었다. 뜨겁고 탄력있는 가슴이 손 안에 가득 들어왔다. 대담해진 하림은 소연의 브라자를 풀고 가슴에 입술을 갖다대었다. 소연이 잠시 하림의 머리를 밀치는 듯이 했지만 곧 포기한 듯 그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머리 속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들렸다. 하림은 황급히 소연의 청바지를 내렸다. 소연이 담요를 끌어당겨 가리는 시늉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곧 그녀는 아무런 가림도 없는 알몸이 되었고, 하림 역시 한 마리 자연 그대로의 짐승이 되었다. 오랜 쇠사슬에서 드디어 풀려난 것이다.
마침내 쇠사슬에서 풀려난 욕망이란 이름의 짐승은 너무나 당당하고 너무나 거침이 없어보였다. 모든 도덕이나 회의, 의심, 불안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성조차도 힘을 잃고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모든 숫컷들을 제압한 숫사슴만이 그런 당당함을 가질 것이었다.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숫사슴의 울음소리엔 태초로부터 정해진 생식과 번식의, 종의 율법만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다운 암사슴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끄러움이나 주저함이 가시고나자 그녀는 스스로 욕망의 화신처럼 숫컷을 쾌락의 화원으로 이끌고 갔다.
하림은 그녀의 화원으로 황홀하게 이끌려 들어갔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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