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284 '대중의 새발견展'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만국기를 담은 에어 벌룬, 자신의 피를 뽑아 그린 유명 인사의 초상, 우리사회에 '다방'이 어떤 의미인지 인터뷰한 영상 기록, 냉장고 속 물건들을 배경삼아 그 안에 레저 활동을 즐기는 군상을 그린 프린트 작품, 현대인들의 감정과잉 상태를 풍자한 크로키, 관람객들에게 모형 눈알을 붙여 작품을 완성토록 유도하는 참여형 미술.
구(舊) 서울역사를 복원한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 284'에 '대중'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전시회의 풍경이다. 대중의 꿈, 욕망, 삶, 근대 그리고 노숙인, 종교집회 등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이 장소에 팝아트 작가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중'을 작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전시 제목은 '대중의 새발견'으로, 여기서 '의'는 중의적 표현이다. 관객이 이번 전시의 주체인지, 작품을 만든 이가 주체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란 뜻이다. 또 '재발견'이 아닌 '새발견'이라고 한 것은 난해함과 이론적, 미학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을 도구로 어떻게 우리의 문화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대중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 고민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노암 문화역서울 예술감독은 "오늘날 대중과 대중문화는 치열한 문화의 전장(戰場)이다. 세상은 대중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으려 경주하고 마찬가지로 예술도 대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대중의 문제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작업과 연결해 질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참여작가로는 강영민, 권기수, 권오상, 김지훈, 낸시랭, 왕치, 윤현선, 이준영, 전미래, 최현주, 후디니, 반달 등 총 25명이 오브제, 설치, 회화, 인형극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내놨다.
1층 전시장에 대형 '만국기 에어벌룬'을 선보인 강영민 작가는 1990년대 말부터 두각을 나타낸 팝아트 작가다. 최근 소셜팝(Social Pop)이란 개념을 내세워 우리 사회에서 팝아트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비평적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만국기 시리즈를 거대한 기구 형태로 설치해 평화를 표현하고 있다.
김지훈 작가는 자신의 피를 뽑아 물감으로 만들어 스타의 초상을 그린다. 그의 작품은 스타가 모든 것을 갖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피를 매혈해서라도 성공하려는 욕망사회를 은유하고 있다.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 출신 마크 퀸도 이와 같은 표현 방법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왕치, 김준도 초기 피를 이용한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피'는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미술의 중요한 주제가 돼온 '신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중요한 모티브로 선용돼 오고 있다.
작가 김창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늘 새로운 형식의 인터랙티브 미디어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는 2003년 제작한 영상작품을 보여줬다. '다방'이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지에 대한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 기록이다. 화가들에게는 전시공간이 별로 없었을 시절 사람들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이기도 했던 '다방'. 작가는 작품에서 대중가수, 미술가, 다방 레지, 권투선수 등 한국 대중문화의 구성원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진솔한 인터뷰와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한다.
윤현선 작가는 일상의 풍경과 생활용품들 사이로 현실 속 인물들을 꼴라주한 초현실적인 풍경을 제작한다. 이 중 시간이 지나버리면 스파게티와 같은 썩어버리는 음식을 배경으로 삼고 그 안에 레저, 스포츠 활동으로 즐거운 인간 군상들을 담아냈다. 작가에게 현실을 산다는 것은 욕구와 본능에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마저 잃어버리고 돼지가 되는 악몽의 연속으로 이해된다. 이준형 작가는 고통 또는 희열의 이중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여성의 초상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림 속 여인은 마치 선데이서울의 야담을 재현하는 듯 격렬한 감정의 상태를 연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시민 참여형 퍼포먼스 작업도 꽤 눈에 많이 띈다. 그중에 최현주 작가는 모형 눈알 하나씩을 붙이는 관객에게 10원을 제공해 참여를 유도한다. 흰 캔버스에 관람객들은 작가가 의도한 장치대로 그렇게 눈알을 붙여 작품을 완성해 간다. 여기서 이런 움직임은 '예술'을 '노동'으로서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상호작용의 작품 형식으로 예술과 노동의 경계, 개념과 행위의 경계를 부드럽게 와해하는 작업으로 인상적이다.
미술 평론가이자 퍼포먼스 활동을 벌이는 왕치 (본명 윤진섭) 작가는 이번에 자신의 '똥'을 소재로 한 '예술가의 똥'이란 작품을 들고 나왔다. 왕치 작가는 "작가들이 생존에 너무 힘들고 지쳐 똥의 내용이 시원치 않으므로 개도 잘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며 자본주의와 예술에 대한고민을 작품에 담아냈다. '왕치'란 가명은 작가가 어릴적 본 홍콩 드라마 속 산적무리의 두목 이름이라고 한다. 전시는 다음달 14일까지. 문의 02-3407-3500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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