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잘 나가던 엘리트 관료가 출근길에 긴급 체포됐다. 4년 4개월의 수사와 법정공방, 그리고 292일의 수감 생활. 대법원은 결국 '무죄'를 선고했지만 공직사회엔 금기가 하나 생겼다. '책임질 일은 만들지 말자'.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다.
이 얘기의 주인공인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가 책을 펴냈다. 책 제목도 '변양호 신드롬(부제 긴급체포로 만난 하나님·홍성사)'이다.
책은 수사를 담당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변 대표의 공방일지다. 2006년 6월 12일 출근길에 긴급 체포되던 날부터 2010년 10월 14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변 대표가 견딘 4년의 기록이 담겨있다. 변 대표는 당시 현대차그룹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2심에서 다시 법정 구속됐다. 도중에 외환은행 헐값 매각 혐의가 추가돼 모두 142번 재판정에 섰다.
이 사건 전까지 변 대표는 '잘 나가는 공무원'의 표상이었다. 재경부 시절엔 핵심보직인 금융정책국장으로 최장수 기록(2년10개월)을 세웠고, 1998년에는 유로머니가 선정한 '아시아 위기 국가의 능력 있는 관료'에 뽑혔다. 2001년에는 월스트리트 저널이 뽑은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갈 15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선후배들은 지금도 그를 "가장 아깝고, 안타까운 관료"로 꼽는다.
삶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던 변 대표는 검찰 수사 과정에 느낀 문제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검찰과의 싸움은 힘겹다. 검사는 같은 사항을 묻고 또 묻고 또 묻는다. 때리는 고문은 없어졌지만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계속 가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고문이다." 전직 재정부 고위관료는 "이 대목을 읽으며 참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변 대표의 책은 관심과 우려 속에 세상빛을 봤다. 2008년 초고(草稿)의 존재가 알려진 뒤부터 세간의 관심이 높았지만, 2010년 출간 계획은 자의반 타의반 미뤄졌다. 그렇게 3년. 검찰에 대한 분노로 얼룩진 초고에선 독기가 빠졌다. 대신 종교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더했다. 부제가 '긴급체포로 만난 하나님'인건 그래서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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