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가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하나금융과의 인수계약 마감 시한인 5월까지 끌고 왔다.
저축은행 부실 뇌관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상화를 위해 정권 실세인 금융지주사 회장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분발'을 촉구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서슬퍼런 존재감도 이 문제에서 만큼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그는 지난달 "(심사를) 4월 중에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수표를 날린 셈이 돼 버렸다.
해결사 이미지도 실추됐다. 두 달 전 당국이 론스타를 금융자본으로 인정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을 예측한 이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 조작과 관련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내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론스타의 대주주 수시적격성 판단을 유보하는 등 정책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법리적인 해석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수의 법무법인에 의뢰해 진행한 실무 차원 법률 검토에서 의견이 엇갈리자 소신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론스타 정체성 심사를 미룰 근거를 찾는데 급급한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의 양벌규정 위헌 결정 등 여러 법적 쟁점에 새로 법리 검토를 해야 한다며 결정을 미루고 있다.
공직자로서 신중함은 덕목이지만 지나치면 책임회피가 된다.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기는 과정에서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함께 '헐값 매각', '부적절한 승인'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김 위원장(당시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이 '원죄'를 의식해 결론을 미루고 눈치를 살피는 것 아니냐는 금융권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제가 될 만한 정책결정에 개입하지 않거나 뒤로 미루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 트라우마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중대한 결정이 적기를 놓치는 바람에 금융업계가 입을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제금융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외환은행의 가치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외환은행에 정상적인 영업과 금융사고 방지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낸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대외이미지도 고려해야 한다. 자칫 글로벌 금융업계가 한국 금융당국의 고지식한 처방에 반감을 가질 수 있다. 지금이야 적정 수준 논란이 제기될 만큼 충분한 외화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외국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현상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조태진 기자 tj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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