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29일 오전 11시 서울 수송동 국세청 기자실. 국세청의 세무조사 관련 브리핑이 예정돼 있었다. 30석에 이르는 좌석은 발표 30분 전에 다 채워졌고, 기자실 뒤편은 카메라들이 빼곡히 들어서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자리를 못잡은 몇몇 기자들은 서성거렸다.
발표 시간이 되자 김영기 본청 조사국장이 들어섰다. 조사과장들도 배석했다. 김 국장이 미리 준비한 자료를 읽어 내려갔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이용해 세금을 포탈한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한 한국인 명단을 잇따라 공개하면서 역외탈세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를 반영하듯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수차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악질적인 조세포탈 행위인 역외탈세를 국세청이 올해 중점 과제로 선정해 조사역량을 집중하고 있는데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박수를 보낸다.
다만 현장에서 이날 발표를 지켜보던 기자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국세청이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이날 발표를 강행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통상 정부 부처의 대변인실에선 매주 금요일 기자들에게 그 다음주에 브리핑할 내용을 미리 공지한다. 지난주 금요일 국세청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내주 브리핑 계획 없음'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국세청의 이날 브리핑은 발표 이틀 전인 27일 오후 5시가 넘어서 공지됐다. 국세청의 공지 4시간 전인 27일 오후 1시 뉴스타파가 2차 명단을 공개했다. 지난주 1차 발표에 이어 또 한번의 파장이 일었고, '국세청은 뭐하느냐' '왜 팔짱만 끼고 있느냐'는 등의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국세청이 당초 계획에 없던 브리핑을 강행한 이유다.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발표한 꼴이 된 셈이다.
조세 행정을 집행하는 국세청은 여론을 의식할 이유도, 여기에 휘둘릴 필요도 없다. 국세행정 최우선 과제인 '조세정의 확립'을 위해 묵묵히 나아가면 된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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