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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6장 봄비 내리는 아침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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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6장 봄비 내리는 아침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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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은 일어나서 렌지 위에 찻물을 올려놓으며,
“어쨌거나 고마워. 사실 지금 만화대본 작업하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가 않았거든.”
하고 소연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소연이 허리를 길게 빼고 노트북 자판을 들여다보는 시늉을 했다.
“만화 대본....?”
“응. 만화가가 만화 그리기 좋게 줄거리를 짜주는 거야.”
“재밌겠네. 어떤 내용인데요?”

소연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하림을 쳐다보았다. 진한 갈색 눈과 마주치자 하림은 공연히 괜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서 그런가. 처음 만날 때 몰랐는데 이렇게 단 둘이 가까이 있으니 이상하게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
“별 거 아니야. 악당이 있는데, 지구를 구하라, 뭐, 그런 내용이야.”
하림이 그런 속을 감추기라도 듯이 대충 뭉턱스럽게 대답했다.
“베트맨 같은 거....?”
“뭐, 그런 셈이지. 시집 간 우리 옛날 애인이 만화 출판사 편집장을 하고 있는데 날더러 먹고 살라며 맡겨 준거야.”
“호오, 그러셔. 오빠는 좋겠다. 먹고 살 걱정해주는 옛날 애인도 다 있구.”
소연이 부러운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이 며칠이야?”
일회용 커피를 따서 넣고 잔에다 물을 부으며 하림이 말했다.
“십이일 월요일. 왜요....?”
“응. 그냥.”
커피 탄 잔을 소연과 자기 앞에 놓으며 하림이 지나가듯 말했다.
십이일. 배문자랑 꽁지머리랑 결혼하는 날짜가 이십일이라 했으니 일주일 정도가 남았다. 신경 쓸 일도 아니고, 신경 쓸 필요도 없었는데 괜히 신경이 쓰였다.
“나 안 가도 되지?”
하림이 그날 그렇게 물었고,
“제발 오지 마, 인간아.”
배문자는 그날 그렇게 답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결혼 날짜를 짚어보는 일 또한, 남의 집 조상 제삿날 헤아려보듯 싱거운 짓일 것이었다. 배문자가 시집을 가든 결혼을 하든 무슨 상관이랴.
“참, 며칠 전 물 길러 갔다가 소연이 사촌언니 봤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하림이 문득 생각 난 듯이 말했다.
“이야기 들었어요.”
“너 있나 찾아봤더니 없더라.”
“토란국 이야기도 했다면서요?”
“응. 고맙다고 했더니 뭔 소리냐 하는 투로 쳐다보시는 거 있지? 난 네가 저지른 건 줄도 모르고 진짜인줄 알았잖아?”


소연이 가볍게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이, 바보! 하림 오빠, 생각보다 순진하네요. 그 언니가 언제 봤다고 그런 걸 갖다주라고 했겠어요? 알고 보면 보통 짠돌이가 아닌 사람인데....”
“그래?”
“도와주러 왔다고 하지만 나도 알반데 아직 돈 한 푼 받지 못했다구요.”
“그래? 하긴 좀 고약하게 생기시긴 했더라.”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럴거예요. 고생해 본 사람이 남을 더 잘 이해해준다고 하지만 알고보면 그게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고생한 사람이 더 각박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친구들도 그렇구.”
소연이 커피를 홀짝거리며 나이답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보면 오연수 닮은 그녀의 눈매에도 그늘이 느껴졌다.


글. 김영현 / 그림.박건웅






김영현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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