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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5장 저수지에서 만난 여인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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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5장 저수지에서 만난 여인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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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똥철이 주장하는 망명정부의 꿈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어서, 종국에는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저 중국 송나라 때의 양산박이 그러했고, 홍길동의 율도국이 그러할 것이다.수호지(水湖志)에 나오는 양산박은 도적들이 모여서 만든 일종의 소굴이다. 여기엔 딱 백팔명의 온갖 형태의 도적들이 등장하는데, 이 도적들은 그냥 도적이 아니라 의적이며 호걸들이다.

급시우 송강을 비롯, 꾀 많은 오룡 선생, 표자두 임충, 소선풍 시진, 술 잘 먹는 노지심,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송, 도끼질 잘 하던 불같은 노규..... 이름만 들어도 설레게 하는, 다들 한 가닥씩 하는, 사나이들이다.


기존 질서로부터 퇴출당한 그들은 송강이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내를 중심으로 량산 깊숙이 둥지를 틀고 중앙권력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
그러니까 양산박이란 일종의 그들만의 망명정부였던 셈이다.

지금 보면 갖가지 인물들의 영웅적 행태가 우습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지만, 양산박 수호지(水湖志) 깊은 곳에는 분노가 숨겨져 있다. 부패할대로 부패한 권력과 그들에 의해 자행되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 대한 노도같은 민중적 분노가 이 이야기를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쩨쩨하고,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들어있다. 말하자면 양산박의 다들 한가닥씩 한다는 사나이들은 이 쩨쩨하고, 더럽고, 치사한 세상살이가 싫어서 그들만의 망명정부를 만들었던 것이다.
결과는....?


비극적인 종말이다. 기존 주류 권력은 그들을 투항시켜 잠시 끌어안아 주는 척 하였지만 곧 토사구팽시키고 만다. 비주류는 어디까지나 비주류인 셈이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기는 별 따기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것을 흔히 고상한 말로 ‘혁명’이라 부른다. 혁명이 되지 못하면 그저 ‘난(亂)’이 될 뿐이다. 성공해서 혁명이 된 난의 주인공들은 그 다음 역사의 주류가 되지만 성공할 확률은 만의 하나도 되지 않는다.
설사 그들이 성공하여 주류가 된다한들 그들 역시 곧 부패하게 될 것이고, 쩨쩨하고, 더럽고, 치사한 꼴들을 만들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이전의 자신들의 운명이나 다름없는 새로운 비주류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게 인간들의 역사인 것이다.
이상향인 율도국으로 날아간 홍길동의 운명 역시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었다. 이상은 현실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요, 추진력이긴 하지만 승리자는 언제나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반쯤 썩은 사과처럼 썩은 반쪽을 안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똥철이의 망명정부는 그저 내 마음의 망명정부로 머무는 것이 좋을지 몰랐다. 그저 술자리의 망명정부가 좋을 것이었다.
주제넘게 달라이 라마라니....? 그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거기야 엄연히 티벳이라는 제 민족이 있고, 제 국가가 있으니까.... 그리고 제 종교까지 있으니까.... 중국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티벳은 티벳일 뿐이고, 수반은 달라마 라마일 뿐이다. 그러니 망명정부가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하림은 친구 똥철이 좋았다.
그의 장광설과 개똥철학이 그리웠다. 한바탕 웃고나면 허전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웃음 뒤에는 정곡을 찌르는 아픔이 있었고 쓸쓸함이 있었다.
그게 똥철의 힘이었다.
내 마음의 망명정부....후후.
그래도 똥철이 덕분에 망명정부 국정원장 자리는 하나 챙긴 셈이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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