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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5장 저수지에서 만난 여인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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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5장 저수지에서 만난 여인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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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마치 무대 위에 등장하는 배우들처럼 각기 무슨 잘 짜여진 각본처럼 차례로 나타났다가 약간의 이야기와 의문을 남긴 채 총총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들은 각기 따로 같았지만 아직 무대에 등장하지 사람들을 포함하여 서로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불교에 인드라망이란 말이 있다. 인드라망이란 인도의 인드라 신, 곧 제석천(帝釋天)이 살고 있는 삼만 삼천 세계를 덮고 있는 그물을 말하는데, 이 그물의 그물코에는 그물코마다 투명한 구슬이 달려 있어 이 구슬들은 서로서로를 비추게 된다. 그리하여 각 구슬을 들여다보면 무한정 이어진 서로의 모습이 되비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삼라만상은 얼른 보면 각각인 것 같지만 그물코처럼 서로 엮이어 하나가 되어있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뜻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나비효과’라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작은 나비 한 마리의 미묘한 날개짓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져서 마침내 저 멀리의 폭풍을 이루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사소한 작은 일도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면 마침내 다른 모든 것들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삼라만상은 각각이며 동시에 하나이다. 우주도 하나이며, 생명도 하나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인생사 또한 그러할 것이다. 각각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도 알고 보면 하나의 끈으로 엮여져 있을 것이다. 아침 일찍 물 뜨러 갔다가 만났던 하소연의 중풍 맞은 늙은 사촌언니나 수도 고치는 왔던 사내, 절름발이 늙은 총각인 이장 운학이, 산책길에 저수지에서 마주쳤던 온통 까만색 차림의 여자, 그리고 윤여사 고모할머니.... 그리고 마을이 노인들과 송사장이란 작자와 계곡에 들어와 사는 다른 인간 군상들.... 본 사람과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자 하림의 머리에 이장 운학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 살구 골은 예전에 바깥 사람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았던 평화로운 마을이었어요. 내가 군대 가기 전에만 해도 아주 조용한, 우리나라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마을이었소.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외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을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말았어요. 마치 몸 안에 독이 스며들듯이 땅 투기꾼에, 실패한 인생들까지 들어오면서 흉흉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던 거요. 어디에서 굴러먹었던지 알 수 없는 음습하고 광기 어린 작가들도 나타나고...’


독이 스며들듯이 스며든 작자들.... 땅 투기꾼이나 실패한 인생을 끌고 들어온 인간,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알 수 없는 음습하고 광기어린 작자들.... 그리고 산을 잘라먹으며 보기 싫게 벌겋게 파헤쳐지고 있는 공사장....그리고 정체 모를 개의 죽음....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게 개가 엽총에 맞아 죽은 것은 어떤 거대한 음모의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설사 그게 이층집 영감이라 하더라도, 누군가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이 틀림없었다.


누가....? 왜....?
하림은 불현듯 계곡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그 외지인들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골짜기에 스며들어와 또아리를 틀고 앉았을까. 어쩌면 그들 역시 이 세상에서 밀려나온 자들이거나 혹은 스스로 세상의 질서로부터 튕겨져 나와 망명한 자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의 망명정부......
그러자 개똥철학자 똥철이 기억났다. 자칭 망명정부 수반님께서 어떻게 사시나 궁금하기도 했다. 모르긴 모르지만 여전히 그 잘난 국회의원 자서전이나 써주면서, 서울 바닥을 떠들며 돌아다니고 있을 터였다. 하림의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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