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비를 머금어 물안개 피었네
풀빛 호수엔 백로가 졸고 있네
길은 들어서면서 해당화 아래로 굽어지고
가지 가득 향기 흩어져 휘두르는 채찍처럼 날리네
조선 유희경의 '달빛 계곡'
■ 다시 읽는 매창의 사랑(2)=유희경(1545~1636)은 매창의 첫사랑이다. 그의 집은 창덕궁 요금문 앞에 있었는데, 현재 규장각 뒤뜰에 있는 500년 된 전나무가 유희경이 심은 것이라고 전해온다. 그는 천인(賤人) 시인으로 매창과 사랑을 나눈다. 이 시는 강원도 양양에 놀러가서 썼다. 해당화가 가득 핀 늦봄, 비가 오려는지 산이 꾸물꾸물하다. 호수엔 백로가 졸고 있는 고요한 그곳을 말을 타고 지나간다. 길이 굽이치는 곳 위로 해당화가 피었는데 마침 부는 바람이 꽃잎을 뿌려 말채찍들이 번득이는 것 같다. 유희경은 부안으로 잠시 내려와 변산(천층산) 일대의 명승을 매창과 함께 놀러다녔다. 매창은 그와 다닌 곳곳을 디카로 찍어내듯 시를 써서 남겼다. 희경은 그녀와 헤어지며 이런 시를 써주었다. "버들꽃 붉고 예쁜, 잠깐의 봄날/뼛골을 다듬이질해도 옥빛 뺨에 진 주름은 못 펴리/선녀는 외동 베개의 차가움을 못 견뎌/구름비를 타고 자주 내려오건만."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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