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본드(Green Bond)'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채권이다.극소수의 몇몇 국제기구들만이 발행해왔던 터라 많은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린 본드의 힌트는 '그린'에 있다. 사실 이 채권으로 만든 자금은 친환경과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녹색산업'에만 국한해 쓸 수 있다. 즉, 용도가 정해진 특수목적채권인 것이다. 따라서 그린본드는 그동안 세계은행(World Bank)ㆍ국제금융공사(IFC)ㆍ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녹색지원에 선도적이고 최우량 신용등급(AAA)을 보유한 국제기구들만 발행해 왔다.
그런 그들만의 리그에 수출입은행이 도전장을 내민 건 지난달 21일 새벽이었다. 발행개시 후 채 10시간도 되지 않아 무려 5억달러어치가 순식간에 팔릴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더군다나 국제기구를 제외하곤 세계 최초의 그린본드 발행이었다.
사실 처음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던 작년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발행 성공에 대한 확신은 크지 않았다. 그린본드라는 시장이 생소하기도 했거니와 과연 품격 높은(?) 녹색투자자들이 싱글A 신용등급인 수출입은행 채권에 투자해 줄지도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피치가 연이어 우리 정부 및 수은의 신용등급을 더블A로 올렸고, 사상 처음 일본과 중국을 제치는 쾌거를 거뒀다.
어디 처음부터 쉬운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투자자들에 수은이 '녹색전담 금융기관'이란 걸 먼저 증명해야 하는 게 선결과제로 떠올랐다. 즉각 수은은 세계적 기후ㆍ환경 전문연구기관인 노르웨이 국제 기후ㆍ환경연구센터(CICERO)에 '적격성 검증작업'을 요청했다. CICERO는 2008년 세계은행이 최초로 그린본드를 발행할 때부터 '녹색산업' 인증을 통해 발행자와 투자자의 신뢰관계를 이어주는 핵심적 역할을 해 왔다.
수은은 CICERO 측에 "수은의 녹색금융지원 프로젝트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환경권고안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뿐만 아니라 필요할 땐 기후영향평가까지 시행하는 등 녹색관련 국제규범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 그 결과 CICERO는 "한국수출입은행은 저탄소ㆍ친환경 프로젝트를 선정하기 위한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과 절차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실행하기 위한 충분한 내부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수은은 주요 투자기관을 물밑에서 접촉해 그린본드 발행시 투자의사가 있는지 알아봤다. 결과는 기대 수준 이상.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사회적책임투자자(SRI)의 문의와 면담 요청이 쏟아졌다. 이에 힘입어 수은은 전격적으로 지난 1월 하순부터 미국ㆍ유럽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지구 한 바퀴를 돌다시피 강행군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그린본드 발행을 목전에 둔 지난달 12일, 또 다른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던 것. 혹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되지 않을까 실무진들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국제적 신용평가기관들이 입을 모아 "북한변수가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분위기를 잡아줬고, 북핵 관련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이 제거돼 시장은 안정을 찾아갔다.
드디어 디데이(D-Day)로 다가온 지난달 21일 새벽, 수은은 전 세계 투자자들을 상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금리수준으로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국내 최대 채권발행기관인 수은이 북한 핵실험의 파고를 넘어서 국제기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그린본드 발행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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