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저비용 고효율을 중시하는 구단이다. 외국인선수 선발에서도 다르지 않다. 카림 가르시아, 크리스 부첵 등 많은 연봉을 지급한 사례도 있지만, 다른 구단이 주목하지 않는 선수를 영입해 재미를 본 경우가 많았다. 2009년 외국인 최초로 구원 타이틀(26세이브)을 차지한 존 앳킨스(보스턴 스카우트)와 2010년부터 3년 동안 29승을 올린 라이언 사도스키가 대표적이다. 앳킨스는 다른 구단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오른손 구원투수였다. 사도스키도 뇌경막하출혈 전력 탓에 많은 구단들이 영입을 기피했었다.
롯데는 외국인투수를 데려오는 데 두 가지 원칙이 있는 듯 보인다. 우선 다른 구단과 경쟁으로 몸값이 폭등한 선수를 피한다. 남은 자원 가운데 한국에서 성공하겠단 의지가 가장 강한 선수를 영입한다. 이 같은 성향은 2011년 11월 삼성, 지바롯데 등에서 스카우트 등을 역임했던 이문한 운영부장을 데려오며 더욱 짙어졌다.
이 부장은 2008년부터 독립리그, 멕시칸리그, 대만프로야구를 떠돌던 쉐인 유먼을 영입했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유먼은 지난 시즌 승승장구했다. 195cm의 큰 키에서 비롯된 높은 타점, 평균 142.6km의 강속구, 비슷한 스피드지만 전혀 다른 궤적으로 떨어지는 서클체인지업(128.6km)과 슬라이더(128.9km) 등을 앞세워 롯데의 가을야구를 견인했다. 나루세 요시히사(지바롯데)처럼 왼팔을 완전히 감추다가 빠르고 간결한 팔 스윙을 보이는 투구 폼 앞에 타자들은 왼손, 오른손 구분 없이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지난 시즌 왼손과 오른손 타자 피안타율은 각각 2할2푼6리와 2할4푼4리였다.
롯데는 최근 사도스키를 내보내고 스캇 리치몬드를 영입했다. 사도스키와 재계약을 포기한 건 잦은 부상보다 지난 3년간의 활약으로 연봉이 많이 오른 까닭이다. 최근 롯데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선수 혹은 감독과의 재계약을 피하고 있다. 2010년 구단은 연봉 100만 달러에 3년 임기를 요구한 제리 로이스터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대신 3년간 총액 8억 원(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에 양승호 감독을 데려왔다. 7천만 원 절감을 위해 이대호(오릭스)와 연봉조정신청까지 가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결별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시장가가 50억 원 정도로 뛰었던 김주찬도 최근 KIA로 둥지를 옮겼다. 40세까지 계약 기간을 보장해달라던 홍성흔도 두산으로 돌아갔다. 물론 이적으로 롯데는 준수한 4선발급 투수 김승회를 얻었다.
리치몬드, 강속구 던지지만...
롯데는 지난해 12월 새 외국인 투수로 리치몬드를 데려왔다. 파란만장한 인생사의 주인공이다. 리치몬드는 고교 졸업 이후 3년간 밴쿠버에 위치한 선박회사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야구와 인연을 끊은 건 아니었다. 미국대학스포츠 2부 리그(NAIA) 소속 3개 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웠다. 이후 독립리그에서 3년을 보낸 리치몬드는 28세이던 2007년 토론토에 입단했다. 이듬해 더블A와 트리플A를 건너뛰고 치른 메이저리그 데뷔전은 성공적이었다. 7월 30일 템파베이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 5.1이닝 7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계속된 노력으로 2009년 선발 자리를 꿰찬 그는 8승 11패 평균자책점 5.52를 남기며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가파른 상승세는 이후 뚝 끊겼다. 어깨부상에 발목을 잡혀 2010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이후에도 부진을 거듭한 리치몬드는 빅 리그에서 점점 멀어졌다.
리치몬드는 지난 2년간 주로 트리플A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했다. 선발로 나선 47경기에서 257.2이닝을 소화하며 17승을 따냈다. 다만 평균자책점은 6.25로 다소 높았다. 지난 시즌 직구 평균구속은 145.4km. 전성기였던 2009년의 147km에 거의 근접했다.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들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는 수치. 그럼에도 직구가 통하지 않은 건 볼의 위력 문제 탓이 컸다. 메이저리그에서 평균자책점 5.52를 기록한 2009년 구종가치(Pitch Value)는 -13.6에 불과했다. 리치몬드는 왼손타자 공략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해 피안타율과 피OPS는 각각 2할8푼9리와 0.927이었다.
리치몬드는 지난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직구의 위력을 끌어올리는데 매진했다. 왼손타자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투심 패스트볼도 장착했다. 공은 비슷한 스피드를 보이는 슬라이더(129.3Kkm), 슬러브성 커브(125.6km) 등과 어우러져 타자의 타이밍을 적잖게 빼앗았다. 특히 왼손 타자 피안타율을 오른손보다 낮췄다. 하지만 피안타율은 각각 2할9푼6리와 3할8리였다. 공의 위력이 배팅 볼 수준으로 전락했다 볼 수 있다.
지난 2년간의 마이너리그 성적만 놓고 보면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롯데가 리치몬드를 데려온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추정된다.
▲리치몬드가 뛰었던 트리플A 퍼시픽코스트리그(Pacific Coast League·이하 PCL)는 타자친화구장이 많다. 이 때문에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은 다른 리그에 비해 높은 편이다. 더구나 리치몬드가 뛴 라스베이거스의 홈구장은 PCL에서도 손꼽히는 타자구장이다. 리치몬드는 홈경기에서 평균자책점 8.84의 끔찍한 피칭을 기록했다. 반면 원정경기에선 3.39로 비교적 호투했다.
▲두 번째는 탈삼진 능력이다. 지난 시즌 리치몬드는 134.2이닝을 던지며 112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반면 볼넷은 43개에 불과했다. 홈구장에서 난타를 당하면서도 볼넷을 내주지 않았단 건 그만큼 제구력과 투쟁심이 나쁘진 않단 걸 의미한다.
▲마지막은 강한 멘탈이다. 리치몬드는 20대를 음지에서 고생하며 보냈다. 30대에 찾아온 빅 리그 생활도 부상으로 짧게 정리됐다. 그럼에도 그는 부상을 이겨냈다. 재승격의 희망이 없는 악조건에서도 지난 2년을 마이너리그에서 꿋꿋이 버텨냈다. 묵묵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킨 건 성실함과 강인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이는 한국 프로야구에 빨리 적응하는데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리치몬드가 한국에서 성공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프로야구를 접수할 정도의 피칭을 선보일 가능성은 분명 낮아 보인다. 장병수 전임 대표이사는 매 시즌 선수단의 목표를 우승이라 했다. 이번 시무식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홍성흔, 김주찬, 사도스키 등이 빠져나간 공백을 채울 퍼즐 조각은 리치몬드와 김시진 감독 둘뿐이다. 나쁜 조합은 아니다. 우승을 향한 롯데의 의지가 잘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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