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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유현숙의 '쌍화점-늙은 상궁의 말' 중에서

시계아이콘00분 32초 소요

능화문 문살 틈으로 황초불이 흔들립니다//여인의 깊은 바닥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금침을 밟고 문턱을 넘어 대청바닥을 적십니다/급기야 조바심이 옥체의 등골을 타 내리고 용안이 남루해지며 미간에 그늘이 들고 수심 깊습니다//(......)/애써 마음을 굶기며 화선지 가득 난을 치던 어수(御手)가 가늘게 떱니다/난 잎 끝에서 불길이 번집니다/하늘 아래 남녀상열지사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세익스피어가 그러했고 스탕달이 그러했으며 장안에 떠도는 이 나라 시편들이 또한 그러하옵니다//뼈와 뼈가 부딪혀 타는 이토록 지극한 몸 안의 불꽃을 이제 그만 통촉하십시오/대전으로 드시지요 전하, 등촉을 들고 따르겠습니다


유현숙의 '쌍화점-늙은 상궁의 말' 중에서


■ 어찌 늙은 상궁의 말이겠는가. 하늘 아래 남녀상열지사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묻는, 저 여인의 마음속에 감도는 뜨거움과 어지러움을 어찌 옛사람의 말이라고 귀 끝에 흘리겠는가. 추운 날이어서 그런가. 시간이 얹힌 몸이 저절로 그런가. 요즘은 엄선한 단 하나의 사랑으로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던 젊은 날의 까탈스러움이 오히려 미안하다. 마음을 굶기며 사는 삶이라니. 마름모(菱花紋)꼴 문살 틈으로 엿보는 한 가닥 치정에도 까뿍, 넘어가고 마는 애로(愛老)영화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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