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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최승호의 '늙은 말잠자리의 고독'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7초

이슬 희어지는, 백로도 지난 늦가을 연못을, 철지난 말잠자리가 날아다닌다. 텅 빈 연못을 혼자서, 혹시 살아남은 말잠자리가 있나 하고, 지나온 길도 다시 가보며, 회백색 갈대꽃들이 시드는 연못 가장자리로 날아다니는 늙은 말잠자리의 고독은, 아마 당신이 말잠자리가 되어 몸소 날아다녀봐야 알 수 있으리.


■ 백로(白露)가 이슬이 희어지는 때라는 걸 새삼 새기며, 희어지는 머리를 괜히 만져본다. 스물, 서른, 혹은 마흔. 신문사 편집국에는 거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떠돌아다녔다. 봉급이 오르고 직급이 오르는 일이 좋은 일인 줄만 알았다. 언젠가부터 동료들이 하나씩 둘씩 떨어져 나가더니 문득 돌아보니 편집국 최고령자가 되어 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동료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한다. 어쩌면 이 단독자(單獨者)의 자유로운 자리에 서기를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나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지난 늙은 말잠자리의 고독은, 정말 당신이 말잠자리가 되어 '혹시 살아남은 말잠자리가 있나 하고' 연못 가장자리를 날아다닐 때라야 알 수 있다는 걸 실감한다. 담담하고도 숙연하게 나는 날개를 곧게 펴고 다시 편집국을 맴돌아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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