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오승환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차가운 열정"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분 2초

오승환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차가운 열정"
AD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마운드와 강단은 차이가 없었다. 돌 직구 같은 거침없는 입담. 곤란한 질문에도 얼굴은 흔들릴 줄 몰랐다. 차분하게 위기를 넘기며 청중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또 한 번의 멋진 매듭.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다웠다. 삼성의 오승환이다.

오승환은 20일 생애 두 번째 강단에 올랐다. 삼성그룹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 마련한 콘서트 ‘열정樂(락)서’의 마지막 강연자로 출연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오른 무대는 강연, 강의, 설교 등과 다소 거리가 멀었다. 토크쇼에 가까웠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개그맨 정범균의 질문에 답을 내놓는 형태로 진행됐다.


대화는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졌다. 오승환의 솔직한 자세 덕이었다. 연봉, 내년 거취 등의 민감한 질문에 주저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자신만의 굳은 철학을 밝혀 청중의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가장 많은 호응을 유도한 건 열정에 대한 견해.

오승환은 “‘자신감을 가져’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만의 자신감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다. 그것이 긍정, 생각 등과 연결될 때야말로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공을 힘으로만 던질 수는 없는 법”이라며 “냉정함을 잃지 않는 차가운 열정을 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오승환과 정범균의 일문일답


정범균(이하 정) 선동열 KIA 감독을 뛰어넘은 오승환이다.


오승환(이하 오) (고개를 가로저으며)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것 같다. 국내 최고의 마무리인데 1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6실점을 하더라. 4월 24일 대구 롯데전 2-6 패배다. 김주찬, 황재균 등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340일 만에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당시 화면을 준비했다.


정말 많이 본 영상인데 여기서 또 보게 될 줄 몰랐다. 경기 뒤 류중일 삼성 감독이 ‘소주 한잔 마시고 잊어“라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다른 경기였다면 마셨겠지만 롯데 선수들의 환호하는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잊지 말아야 할 경기 같았다.


오승환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차가운 열정"


그래서 어떻게 했나.


다음날 롯데전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오승환은 이틀 뒤인 4월 26일 대구 롯데전, 팀이 6-3으로 앞선 9회 등판해 무실점 호투로 세이브를 올렸다.)


그때만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다. 10월 31일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도 그랬다. 팀이 2-1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최정에게 중견수 뒤로 빠지는 3루타를 맞았다.


통타당했을 때 속으로 홈런만 되지 말아달라고 빌었다. TV 중계에 담기진 않았는데 간발차로 포구에 실패한 중견수 정형식이 무척 미안해했다.


어떻게 무사 3루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이브를 올릴 수 있었나.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해왔던 대로 막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경기를 내주면 분위기가 SK 쪽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경기에서 졌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다. 영상으로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마운드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야구인생에서 가장 떨렸던 날이었나.


그렇다. 강단에 오른 오늘도 그렇지만 원래 야구를 할 때가 가장 떨린다. 특히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는 SK의 우승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될 수도 있어 올 시즌 가장 떨렸던 것 같다.

김주찬이 KIA와 총 50억 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에는 이택근이 넥센과 50억 원에 계약했고. 내년 FA가 되는데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나.


그보단 많이 받아야겠다(웃음). 당장 내년 계약을 생각하고 싶진 않다. 삼성이 3연패를 이루는 데만 집중하겠다.


얼마나 악력이 세야 돌 직구를 던질 수 있는 건가.


일단 공을 조금 특이하게 잡는다. 나도 몰랐는데 다른 선수들과 차이가 있더라. 사실 운동에 특별한 비결은 없다. 반복 훈련만이 답이다.(오승환은 이어진 악력 테스트에서 정범균이 사과를 손쉽게 세로로 쪼개자 가로로 쪼개는 모습을 선보였다.)


오승환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차가운 열정"


투구 폼이 다소 특이한데.


내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다. 학창시절 폼을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밤늦게까지 교정에 매달렸는데 생각처럼 잘 되진 않았다. 그래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체력 증강이었다.


프로에서 투구 폼이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데 주효하고 있다. 학창시절 왜 바꾸려고 한 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폼을 보고 내가 놀랐을 정도였다.


어떤 선수의 폼을 가지고 싶었나.


한화의 정민철 코치다. 교과서 같은 자세가 부러웠다. 비슷하게 던진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똑같이 되지 않더라. 느낌만 정민철 코치였다(웃음).


노모 히데오처럼 더 독특한 투구 폼을 가진 선수도 있다.


장단점이 있는 폼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반복훈련도 많이 했을 테고. 자신감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시험을 볼 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감 있게 해”라고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남들이 한 번 하는 걸 더 해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남들보다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뛰었고 공을 한 개라도 더 던졌다. 그런 과정을 이겨내며 내 자신이 최고라고 믿었다.


허리힘이 무척 좋아 보인다. 비결이 무엇인가.


허리는 투구에서 가장 많은 힘을 쓰는 부위다. 사람이 가장 많은 힘을 낼 수 있는 부위이기도 하고. 회전을 빨리 가져가는 훈련을 많이 했다. 투구 폼과 잘 연결될 수 있도록 두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튜빙을 빠르게 자주 소화했다.


오승환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차가운 열정"


마운드에서의 중압감은 어떻게 극복하나.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번 한국시리즈 5차전을 예로 들어보자. 마지막에 삼진으로 돌려세운 건 친구인 (김)강민이었다. 마운드에서 ‘내가 왜 쟤한테 져야 돼?’라고 생각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속으로 만든 거다. 거의 모든 상황을 연결해서 투구했던 것 같다.


어린 친구가 타석에 서면?


경험이 더 많은 데 질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결과가 좋아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을 긍정으로 연결하면 쉽게 자신감이 붙는다.


나이 많은 타자가 타석에 서면?


‘순발력이 떨어졌겠구나’라고 생각한다(웃음).


별명이 돌부처다. 표정 관리를 따로 연습하나.


그런 건 없다. 솔직히 야구장에서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치어리더를 매일 볼 텐데.


설레지 않는다. 새로운 친구가 오면 다르겠지만(웃음). 따로 만나는 일 등은 없다. 치어리더와 결혼한 친구들도 몇 몇 있지만 내게 관심사는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편인가.


물론이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늘 도전한다. 어차피 하루하루가 승부 아닌가. 두려움도 있지만 해보지 않으면 결과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잘 되지 않으면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 그만이고. 도전을 통해 성공을 해봐야 더 큰 도전도 감행할 수 있다. 그래서 늘 현재에 만족하지 않으려고 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할 때는 어땠나.


덩치가 정말 산만하다. 내가 옆에 서면 아기처럼 보일 정도다. 솔직히 몸만 보면 주눅이 든다. TV를 통해 접한 시간이 많아 높은 곳에 있는 선수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는 동등한 위치에서 붙어보고 싶다.


오승환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차가운 열정"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는데.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포스팅 입찰액으로 280억 원이 나왔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친구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생각하고 있진 않나.


나 역시 도전해보고 싶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운동만 해서 특별한 기억은 없다.


삼형제 가운데 막내인데.


부모님이 원한 건 딸이었다. 그래서 엄청 컸을 때도 치마를 입고 다녀야 했다. 당시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주 머리를 묶어주셨는데 야구를 시작할 때쯤 치마에서 벗어났던 것 같다.


야구는 언제 시작했나.


초등학교 5학년 때다. 학교에 야구부가 없었는데 전근오신 선생님이 체력장 하는 모습을 보고 전학을 권하셨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중학교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우연히 선수들이 체벌당하는 모습을 보시고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스스로 야구를 내려놓고 싶었던 건 대학교 때다. 수술과 재활 과정을 거쳤는데 열악한 환경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해결하나.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세 가지밖에 없다. 블론세이브를 하거나 홈런을 맞거나 승패에 관계없이 점수를 내줄 때다. 그럴 때면 폭식을 한다. 많이 먹을 땐 정말 많이 먹는다(웃음).


오승환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차가운 열정"


주로 무엇을 즐겨먹나.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이것저것 많이 먹는다. 눈앞에 있는 건 다 섭취하는 것 같다. 집에 가면 먹을 게 많다(웃음).


선수들과 동거를 했다던데.


윤성환, 안지만과 셋이 2년 정도 살았다. 막내인 지만이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대답은 잘 하는데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불 좀 끄고 자”라고 말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환하게 켜있다. 설거지도 절대 하지 않는다. 물론 설거지는 내 담당이었지만.


안지만도 설거지를 할 때가 있을 텐데.


해도 깨끗하지 않아 또 해야 한다. (찌꺼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윤성환은 어떠한가.


추위를 많이 탄다. 음식도 회를 좋아하고. 하루 세끼를 초밥만 먹을 형이다. 체질적으로 열이 많은 나는 회보다 육류를 좋아한다. 하지만 동생이다 보니 많이 맞춰줘야 했다.


다시 뭉칠 생각은 없나.


너무 좋았지만 절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지금처럼 혼자 사는 게 좋다(웃음).


스포츠스타이다 보니 안티도 많을 텐데.


댓글을 많이 확인하는 편이다. 기사를 읽게 되면 자연스레 보게 된다. 부진과 부상으로 힘들었을 때 악성댓글을 많이 접했는데 자존심 상하는 내용이 꽤 많았다. 거의 욕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댓글을 또 달게 돼 있다. 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웃음).


오승환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차가운 열정"


오승환에게 열정이란 무엇인가.


굳이 표현하면 차가운 열정에 가까운 것 같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열정만 가지고 모든 일이 해결되진 않는 법이다. 공을 힘으로만 던지는 게 아니듯, 항상 차가운 열정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은퇴 이후 꿈이 있다면.


야구 외에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 했다. 그래서 무조건 야구가 최우선이다. 야구를 중심으로 생활이 돌아가기 때문에 팬들에게 한층 발전된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 언제까지 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항상 최선을 다 하겠다.


외모와 실력을 제외하고 자신의 인기비결을 꼽는다면.


야구가 아니면 할 이야기가 없는데. 팬들이 알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굳이 꼽는다면 허벅지다(웃음).


야구인생이 몇 회 정도 왔다고 생각하나.


앞서 말씀드렸지만 은퇴 시점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늘 워밍업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매일 경기를 준비하고 1회부터 컨디션을 유지한다. 은퇴 시점이 다가오겠지만 늘 시작을 1회가 아닌 워밍업으로 여기고 9회를 막아내겠다.




이종길 기자 leemean@
정재훈 사진기자 roz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