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이달초 미국 뉴욕 맨하탄의 한 바에서 칵테일 파티가 열렸다. 요란한 음악이 흐르며 무료 칵테일이 제공되고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젊고 예쁜 여성들이 머리를 휘날리며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 투영된다.
이 행사에 초청된 이들이 남자였을까. 아니다. 모두 여성 블로거들이었다.
이들은 유명 오토바이 업체 할리데이비슨의 초청을 받아 이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내내 참석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참석자들은 오토바이 시동을 거는 법과 기어 변속 방법을 배웠다. 다른 이들은 쓰러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는 비법도 전수받았다.
할리데이비슨은 이같은 행사를 '개리지파티'라고 부른다. 지난해에만 750번이 넘게 이 행사를 통해 여성 잠재 고객들과 만났다. 지금도 이 회사의 여성용 웹사이트에는 개리지 파티 일정이 빽빽이 올라와있다.
영국경제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는 할리데이비슨의 변신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남성용 브랜드, 이른바 '마초' 기업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에서도 할리데이비슨은 40대의 백인남성이타는 거친 취미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할리데이비슨을 지탱하던 고객사이에서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할리데이비슨에 열광하던 베이비 붐 세대의 노령화와 은퇴가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여성도 남성들과 다르지 않다=할리데이비슨은 과거부터 이어져온 '마초'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변신을 꾀했다.
그 해법이 지구 인구의 절반인 여성과 소수민족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특히 주 대상은 여성이다.
변화가 필요했다. 여성을 상대로한 라이딩 교육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여성들의 자유 본등을 일깨우는 광고전략도 더해졌다. 여성 라이더들을 위한 정보공유 공간도 마련했고 여성 마케팅을 위해 별도의 팀도 꾸렸다.
할리데이비슨의 여성 마케팅 책임자 클라우디아 가버는 "할리데이비슨은 이제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고 그들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할리데이비슨은 미국내에서 35세 이상의 백인 여성들이 구매한 오토바이중 6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할리데이비슨의 북미 마케팅 홍보담당자인 디노 버나치는 "여성들을 상대로한 캠페인성 광고는 우리가 기존에 유지해온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며 "열정과 자기 표현, 개성을 나타내려는 욕구에 있어 남녀가 다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은 남성 이미지 기업은 할리데이비슨 뿐이 아니다. 대표적인 독일산 스포츠카 업체인 포르쉐 역시 여성을 목표로해 시장을 확대하는 성과를 거둔 예다.
포르쉐는 지난 2002년 선보인 소포츠유틸리티(SUV) 차량 카이엔으로 유려한 디자인과 폭발적인 성능을 유지하며넛 여성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카이엔을 구매한 여성들도 남성과 같은 포르쉐의 정신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출력이가 부족하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웨건과 같은 '엄마 자동차'를 모는 것을 거부한다.
재미있고 멋진(Cool)지고 빠르고 강력하지만 아이들과 카시트, 장 봐온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차를 원하는 여성들이 포르쉐 카이엔에 몰려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분석이다.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라=하지만 문제도 있다. 남성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여성들을 끌어 모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FT는 지적했다. 여성시장공략에 실패하고 자칫 남성들마저 놓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한번 여자용 제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대다수 남성고객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면도기 업체 질레트가 비너스라는 여성용 면도기를 출시한 것도 발상의 전환이었지만 이런 점을 감안해 별도의 브랜드로 출시한 경우다.
광고 전문가들은 이런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남성들과 여성을 분리해 상대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유의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할리데이비슨의 여성용 홈페이지에는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가 실려있다. 자신의 라이딩 경험과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여성들로 이 홈페이지는 항상 붐빈다. 멋진 라이딩 경험을 올린 글에는 서로 점수도 매긴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홍보활동도 함께 병행된다. 그러면서도 홈페이지 첫화면은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로 남겨놓았다.
한 광고업계 전문가는 "할리데이비슨은 여성들을 위한 별도의 웹사이트를 구축함으로써 여전히 사업의 중심은 남성들에게 있다는 완충 장치를 마련했다"고 평했다.
이같은 남성 브랜드들의 변화에 대해 여성용 모터사이클 온라인 잡지인 레이디모터닷컴의 잰 플레스너 편집장은 "다른 기업들도 할리데이비슨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 여성들은 기업 광고의 목표 대상이 아니었지만 할리데이비슨은 거대한 새로운 시장이 있음을 깨달은 경우다"라고 평했다.
◆여성의 요구에 귀기울여라=물론 광고와 마케팅 노력만으로 여성 시장을 뚫을 수는 없다. 제품디자인도 여성의 요구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할리데이비슨은 남성이 여성을 뒤에 태우는 일반적인 오토바이 대신 여성 혼자만 탈수 있는 모델을 선보였다. 여성들이 두명씩 오토바이를 타는 일이 드물다는 점에 착안한 그만큼 다양한 노력이 있기에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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