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로 구현된 피나 바우쉬의 춤.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나는 춤춘다, 고로 존재한다." 피나 바우쉬는 그 자체로 현대무용의 한 카테고리가 됐다. 1973년 서른 세 살의 나이로독일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이끌기 시작한 그녀는 '봄의 제전', '카페 뮐러'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전세계적 지지를 누렸다. 빔 벤더스의 '피나'는 2009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그녀의 작품을 영화라는 형식으로 포착하는 동시에 3D 기술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스크린으로 춤추며 들어오다=오는 30일 개봉하는 빔 벤더스의 '피나'에는 무용이라는 예술을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길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빔 벤더스는 1985년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 공연을 보고 그 자리에서 "심장이 터질 듯한 감동에 휩싸였다"고 고백한다. 거장 영화감독과 무용가는 그렇게 친구가 됐다. 이후 그는 끊임없이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 방법을 찾지만 그 둘 사이에는 '벽이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벽을 무너뜨린 것은 3D 기술의 탄생이었다 2007년 록밴드 U2의 공연을 3D로 촬영한 'U2 3D'를 본 빔 벤더스는 이제 피나 바우쉬의 춤을 제대로 옮길 수 있게 됐다고 확신한다. 촬영을 준비중이던 2009년 피나 바우쉬가 암선고 5일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으나 남은 무용단의 의지에 따라 영화는 계속 진행됐다. 2007년 당시에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3D로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없는 것이 고민이었다. 실제 인물을 촬영하면 화면에 잔상이 남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빔 벤더스는 사람의 눈 간격과 비슷한 6~7cm의 거리에 카메라 두 대를 붙여 놓고 거울을 이용해 촬영하는 방식을 직접 고안했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워낙 빨라 2010년이 되자 스테디캠을 사용해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듯이' 촬영할 수 있게 됐다.
빔 벤더스는 3D 기술을 유일한 해답으로 지목한 이유에 대해 '공간감'을 꼽는다. "기존 2D 촬영 방식으로는 무용수들 사이의 공간감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3D 기술은 관객들이 그 빈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실제로 '피나'는 3D의 진가를 제대로 살렸다. 빔 벤더스가 이야기하는 '공간'은 그 자체로 무용의 중요한 일부다. 한없이 안쪽으로 깊어지는 스크린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일으키는 공간의 변화를 충분히 담아낸다.'피나'를 보는 것은 무대 앞 객석을 벗어나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과 함께 움직이는 경험이다. 3D는 재미있고 신기한 기술 차원을 벗어나 피나 바우쉬의 춤을 되살려내는 정확한 표현이 된다.
◆국내 3D 콘텐츠의 향방은=빔 벤더스는 "앞으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영화도 3D로 촬영해보고 싶다"며 "한 번 3D를 본 이상 2D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다양한 3D 실험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국내는 어떨까. 2009년 '아바타'가 가져 온 충격 이후 국내에서도 이명박 대통령까지 "3D 영상시대가 본격화됐다"며 세계 시장 진출 기반 마련을 지시하는 등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3D 시장은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아시아 최초 3D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을 걸고 대대적 홍보를 벌였던 '7광구'는 100억원대 제작비를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흥행에서 참패했다. 그 이후 여태 국내 3D 영화 제작 시장은 얼어붙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3D 영화는 일반 영화보다 카메라가 두 배로 필요하고 제작기간이 길다"며 "흥행 실패 이후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은 3D 영화 제작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문화부는 영화를 포함해 내년 3D 영상콘텐츠 민간제작지원사업 예산으로 138억을 편성했지만 10월 국회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3D 제작이 능사는 아니다. "2D로 만들어도 재밌는 영화만이 3D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관객은 3D라는 이유만으로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국내 관객이 장르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것도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3D 기술이 영화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로 SF와 같은 장르영화를 꼽을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 강한 드라마는 관객들이 굳이 3D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장르영화 반응이 좋지 않다. 역시 3D 기술의 신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받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도 국내에서는 100만명도 안 되는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재미있으면서 3D 기술에도 감탄할 만한 장르영화가 나와 주면 좋은데 아쉽다"는 얘기다.
3D 기술 자체는 헐리우드를 따라잡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장비 도입과 운용 기술력 모두 크게 성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기술지원센터 최남식 센터장은 "국내 촬영감독들이 3D 단편 등을 촬영하면서 각자 '노하우'를 쌓아 왔다"며 "현장에서 3D 촬영을 하는 데 (헐리우드와 비교해)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은 '국가대표'를 연출했던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 3D'다. 중국 서커스단의 소녀와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이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한다는 내용으로 허영만 화백의 '제7구단'이 원작이다. 지난해 크랭크인이 연기됐으나 1년여간 3D 인력 트레이닝등을 거쳐 현재 촬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은 내년 초로 예상된다. 최 센터장은 "'미스터 고'는 그간 노하우 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많이 줄인 작품"이라며 "'미스터 고'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 3D 영화가 자리잡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김수진 기자 sjkim@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