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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나에게 완벽했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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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나에게 완벽했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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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공기 얘기를 했는데 왜 아직도 공기청정기 CF가 안 들어올까요? (웃음)” 박진영은 오디션 프로그램 SBS ‘K팝 스타’의 심사를 하면서 권위보다는 유머에 더 무게를 둔 것처럼 보였다. 참가자들의 무대에 감동하는 표정은 다음 날 인터넷에서 패러디되거나 기사로 생산될 만큼 강했고, “공기 반, 소리 반” 심사평은 여전히 그와 관련된 기사에서 언급되곤 한다. 이쯤 되면 자신을 둘러싼 유머코드를 부정하거나 불편해할 법도 한데 박진영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을 희화화 시킨다. “JYP의 대표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이 절 어려워할까봐 겁나더라구요. 저는 광대로 살아야 하는데, 명예가 높아지고 돈을 많이 벌면서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래서 스스로 못생겼다고 놀리고, ‘이태원 프리덤’도 찍으면서 어떻게든 친근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바닥에 붙어있고 싶지 위로 올라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5백만 불의 사나이>를 보면 박진영이 왜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그냥 나 같았”던 대기업 부장 인영은 “얼굴 빼고 다 명품”일 정도로 능력 있지만 특강 나간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면박을 당할 정도로 아쉬운 외모를 지닌 인물이다. 경찰에게도, 휴게소 직원에게도 외국인으로 오해받고, 온갖 시련 속에서 점점 더 망가지는 그의 행색은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웃음 포인트가 된다.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박진영은 그러한 유머에 최적인 배우였을 것이다. 18년 동안 자신이 한 번도 멋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이 사나이는 언제나 자신의 외모를 배반하는 무대로, 음악으로 멋지다는 기준에 다양성을 부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욱더 “광대”의 길에 매진하겠다는 박진영은 영화를 볼 때만은 “딴따라”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난다. 완벽이라는 기준에 무게를 두며 자신만의 분석 매커니즘까지 완비해 놓은 자칭 “동네 평론가” 박진영. 무대에서 내려와 이제 배우의 길에 한 걸음을 내딛은 그에게 완벽했던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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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나에게 완벽했던 영화들

1.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1993년 | 노라 에프론

“사랑에 대한 제 마음을 제일 잘 표현한 영화예요. 저는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커요. 일도 완벽한 내 짝,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서 열심히 하는 거예요. (웃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도 실제로 처음 본 사람인데 목소리만 듣고 그 사람인 걸 알아보잖아요. 첫눈에 반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이게 핵심이에요. 저도 여전히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기다려요.”
최근 별세한 노라 애프론 감독의 가장 사랑스러운 연출작. 기자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적인 안착을 안겨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이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멕 라이언과 함께 만들어낸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다.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여자가 번듯한 약혼자를 두고 무모해 보이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단 하나, 그녀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다.


박진영│나에게 완벽했던 영화들

2.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5년 | 미셸 공드리

“우리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주는 영화죠.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지만 또 막상 지우려니까 싫고. 정말 너무 나약한 거죠. 너무 아파서 지우고 싶은 동시에 그 추억을 놓지 않고 싶어 하는 인간들. 시간 앞에서 너무 무력하고, 사랑 앞에서 무력하죠. 특히 미셸 공드리 감독의 기억을 지운다는 그 기가 막힌 표현 형식과 아이디어가 놀라웠어요.”
종종 사랑이라는 것은 기억을 주성분으로 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추억을 만드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추억을 이기는 사랑도 분명 존재한다.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조엘(짐 캐리)처럼. 서로의 기억을 지운 뒤에도 매번 다시 사랑에 빠지는 그들을 보면 사랑은 신경계와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박진영│나에게 완벽했던 영화들

3.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
2000년 | 스탠리 큐브릭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노장 감독이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예술혼에 충실하게 만든 영화 같아요.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떠나서 감독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 대표적인 영화 아닐까요? 감독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이 컷이 너무 긴가, 이 컷이 너무 지루하지 않나’ 이런 불안일 텐데 그런 것들에서 초탈해서 나오는 대로 자신감을 갖고 만든 것 같아요.”


스탠릭 큐브릭 감독과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작가주의 감독과 당대 최고의 스타 커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합은 아티스트와의 작업에 늘 목말랐던 할리우드 스타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사되었고, 그 결과 감독은 매 순간 생경한 신 안에 가장 친숙한 얼굴들을 박아 넣는 그만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스와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풀어낸 낯선 이야기는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어지럽지만 긴 잔영을 남긴다.


박진영│나에게 완벽했던 영화들

4. <바람난 가족> (A Good Lawyer's Wife)
2003년 | 임상수

“한국 영화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예요. 우선은 스토리가 정확해요. 두 번째는 비주얼적인 스타일리시가 있었어요. 리듬이나 대중성은 좀 약했지만 1, 2번이 굉장히 좋았어요. 너무나도 치밀하게 계획된 설계가 놀라웠죠. 영화를 보고나서 마음에 일어난 느낌의 원인을 찾다보면 자연스레 분석하게 돼요. 아무래도 전 우리 동네 평론가니까요. (웃음)”


결국 돈 맛을 거부한 <돈의 맛>의 비서 주영작(김강우) 이전에 돈 맛과 세상의 모든 쾌락의 맛을 거부하지 않았던 변호사 주영작(황정민)이 있다. <바람난 가족>의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쾌락을 쫓기에 여념이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보다는 오늘 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이들은 끔찍한 사건으로 그 모든 허울을 되돌아보게 된다.


박진영│나에게 완벽했던 영화들

5. <매트릭스> (The Matrix)
1999년 | 앤디 워쇼스키, 래리 워쇼스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예요. 모든 장르를 완결하는 영화죠. 제가 말하는 완벽한 영화의 네 가지 요소가 모두 들어있어요. 하나는 정확한 스토리, 두 번째는 미술적인 스타일리시함. 세 번째는 리듬. <매트릭스>는 이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대중성까지 겸비했잖아요. 봐도 봐도 끝없이 볼 수 있는 영화예요. 음악도 <매트릭스>처럼 끝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당시 영화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액션 신과 특수 효과 등 무엇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던 <매트릭스>. 여기에 감독들은 영화 곳곳에 다양한 상징들을 배치해 두었다. 가상세계에 대한 선언이기도한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 이론과 모피어스, 트리니티, 네오 등 종교적 언어유희에 가까운 주인공 이름 등 볼수록 새로운 의미들이 튀어나오는 <매트릭스>는 21세기에 등장한 최고의 텍스트 중 하나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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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나에게 완벽했던 영화들

그간 박진영을 뒤따르던 이미지들은 섹시함, 성공, 당당함, 완벽주의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내뱉은 단어는 낮음과 겸손, 대중의 생각 등이었다. 스스로도 겸손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고백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5년 전에 갑자기 변했어요. 그 전까지는 다 내가 잘해서, 내가 성실해서,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벽에 걸린 CD 3장을 보면서 정반대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미국의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앨범들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거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하면서 내려다보니까, 너무 높이 올라온 거예요. 갑자기 그때 팍! 한 번에 모든 게 다 정리가 되었죠. 앞으로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아야 하는 거구나. 이 모든 건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다 운이었구나. 그렇게 기어가면서 살고 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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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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