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다섯번째 공연..황정민, 서범석, 홍광호 등 삼인삼색 '돈키호테' 열전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고전이다. 고전(Classics)이란 말은 작품성이 담보됐다는 뜻도 되지만 그만큼 식상함을 느끼기도 쉽다는 뜻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이 작품이 '중세 기사도에 매료된 돈키호테와 시종 산초 판사의 모험담'이라는 것쯤은 대강은 알고 있다. 특히 풍차를 괴물로 오인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이미 수차례 여러 작품에서 인용되거나 패러디됐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는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고전으로서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피해간 영리한 작품이다. 작품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잊혀져버린 꿈'에 대한 이야기를 철들지 않는 돈키호테의 힘을 빌려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려낸다. 작가 세르반테스 자신이 곧 돈키호테였을 것이라는 가정은 작품에 새로움과 호기심을 더했다.
스페인의 어느 지하 감옥. 세르반테스는 신성모독죄로 이 감옥에 끌려온다. 종교재판을 기다리던 세르반테스는 감옥 안에서 즉흥극을 벌이며 동료 수감자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한다. 즉흥극의 주인공은 라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조.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어 자신을 돈키호테라는 기사로 착각한 그는 예상대로 풍차를 괴수 거인이라며 달려들고, 성이랍시고 여관에 돌진한다. 알론조, 아니 돈키호테의 눈에는 거리의 여자 '알돈자'도 아름다운 공주 '둘시네아'로 비칠 뿐이다.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천둥벌거숭이 마냥 뛰어드는 이 노인을 세상 사람들은 비웃고 무시한다. 그러나 엉터리 갑옷에 구부러진 칼을 떡하니 들고서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는 돈키호테의 꿈을 위한 세레나데는 어느 순간부터 가슴은 묵직하게, 코끝은 찡하게 한다. 천진난만하게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수행하는 하인 산초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돈키호테를 통해 처음으로 희망을 품게 된 알돈자의 사연은 안쓰럽고 아름답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현실을 깨닫고 알론조로 돌아오는 순간은 그 어느 비극보다 잔인하다. 이 세상에 돈키호테 한 사람만이라도 꿈을 믿고, 지키며 살아가길 바랐던 관객들은 그가 현실에 투항하지 않게 응원한다. "꿈을 포기하고 사는 게 미친 짓"이란 돈키호테의 대사에서는 그 어떤 자기계발서를 통해서도 얻지 못했던 위안을 찾게 된다. 두 번, 세 번씩 이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유독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64년 미국 코네티컷에서 초연된 이후 반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맨 오브 라반차'는 한국에서는 2005년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이후 2007년, 2008년, 2010년 세 번의 앙코르 공연을 가졌고, 올해는 다섯번째 공연이다. '당신의 꿈을 되찾아 줄 브로드웨이 불후의 명작'이란 홍보문구가 과장은 아니었음을 작품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황정민, 서범석, 홍광호 등 세 배우들은 각자 다른 개성의 돈키호테를 선보여 티켓을 예매하는 팬들에게 선택의 고민을 안긴다. 알돈자(이혜경·조정은), 산초(이훈진·이창용) 등의 존재감과 주조연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무대연출도 탄탄하고 치밀하다.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6만~13만원, 10월7일까지)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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