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주는 미국 동남부에 위치해있다. 봄과 여름은 무척 덥다. 남부 최대도시인 마이애미는 물론 중부인 탬파베이와 올랜도까지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가 이어진다. 간간히 비가 내리고 크고 작은 허리케인이 몰려오긴 해도 후덥지근한 날씨는 변하지 않는다. 무더위가 시작되면 플로리다 전역에서는 끊임없이 큰 기계음들이 울려 퍼진다. 집 앞, 길거리, 공원 등지에서 잔디를 깎는 소리다. 거의 매일매일 들을 수 있다. 처음 플로리다에 왔을 때만 해도 얼마나 시끄럽던지 적응에 적잖게 애를 먹었다. 물론 지금은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기고 있다.
유독 플로리다에서 잔디 깎는 일이 잦은 건 무더운 날씨에서 비롯된다. 풍부한 햇빛과 강우량으로 잔디가 쑥쑥 자라난다. 그러다 보니 이때쯤이면 잔디 깎는 일은 모두에게 일상사가 된다. 잔디는 겨울철(1년 내내 춥지 않은 플로리다지만 이곳에도 겨울은 존재한다)에도 깎는다. 하지만 그 빈도수는 봄, 여름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이곳에서는 작은 개인 집이 아니라면 대부분 전문 업체에 잔디 관리를 맡긴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이 넓고 관리하기도 힘든 까닭이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장비를 가득 실은 잔디 관리 업체 트럭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 한복판을 가로 질러 다니는 수많은 버스들이 연상될 정도다.
잔디를 깎는 건 사람들의 눈에 보기 좋게 함이 우선이다. 카펫 문화를 즐기는 미국인들은 카펫처럼 반듯한 잔디를 무척 선호한다. 마치 제 머리를 손질하는 양 잔디 전체를 일정한 높이에 맞춰 자른다. 옆선까지도 일직선이 되게끔 정리한다. 사실 자기 머리보다도 잔디 손질이 더 잦은 미국인들이다. 아울러 맨발로 다녀도 다치지 않게끔 안전 관리에도 적잖은 신경을 기울인다.
잔디를 자주 손질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정 명령이다. 이곳에선 잔디를 자연 그대로 방치하면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주변 환경을 해친다는 사유로 다른 미국 전역과 마찬가지로 자치 단체나 커뮤니티 단체로부터 시정 및 벌금 통지서를 받게 된다. 적지 않은 각종 공과금과 벌금에 벌벌 떠는 미국인들로서는 꼭 조경 차원이 아니라 경제적인 면 때문이라도 잔디 손질을 게을리 해선 안 되는 것이다.
더운 날씨로 한 낮에는 텅텅 비게 마련인 동네 스포츠 경기장도 잔디 깎기에선 예외일 수 없다. 사용 시간이 아무리 적어도 필드에 깔린 잔디를 방치하지 않고 열심히 손질한다. 그래서 이곳의 흔할 정도로 널린 야구장들은 낯선 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이끌어낸다. 물감을 입힌 것 같은 푸른색과 면도를 한 것 같은 일정한 높이의 잔디 상태는 그야말로 퍼펙트하다.
동네 구장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프로 구장이 어떨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특히 메이저리그 구장을 가면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필드에 깔린 잔디 상태만큼은 어디를 가든 완벽에 가깝다. 동서남북 어느 빅리그 구장을 방문해 봐도 필드 상태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물을 뿌리며 잔디를 깎고 다듬는데 오점을 남길 리 없다. 마이너리그의 필드 사정도 다르지 않다. 등급에 상관없이 A급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미국 스포츠 경기장의 필드 환경이 이처럼 뛰어난 건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 패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도 보기 좋고 시원한 느낌을 들게 하는 잔디 가꾸기가 경기장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바탕 위에 미국 프로스포츠는 오늘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종률 전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