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개인 통산 18번째 홈런은 15년을 함께 했던 친정팀 넥센(현대 시절 포함)에 비수를 꽂았다. 지난 2차 드래프트에서 LG 유니폼을 입은 16년차 베테랑 김일경이다.
김일경은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 6번 2루수로 선발 출전, 개인 통산 첫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1회 2사 만루에서 상대 선발 강윤구의 시속 142km 초구(직구)를 노려 쳐, 왼 담장을 넘어가는 대형아치를 그렸다. 김일경에게는 꽤 의미 깊은 장타다. 시즌 첫 홈런인 까닭만은 아니다. 친정팀을 상대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김일경은 지난 시즌까지 넥센의 숨은 일꾼이었다. 1997년 전신인 현대에 2차 16번으로 지명을 받아 지난 시즌까지 756경기를 소화했다.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1998년 7월 LG에서 현대로 이적한 박종호의 그림자에 가려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유격수 전향 역시 박진만의 고속 성장으로 가로막혔다. 주전 기회는 결국 입단한 지 10년 뒤인 2007년에서야 주어졌다. 하지만 재정난에 빠진 팀은 그 해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김일경은 이숭용, 송지만 등과 함께 혼란에 빠진 후배들을 일으켜 세웠다. 히어로즈 재창단 이후에도 그랬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로 거듭났다. 넥센의 주장을 맡았던 이숭용, 송지만, 강병식 등은 모두 임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일경이가 도와준 덕에 수월하게 해냈다.”
올 시즌 김일경의 유니폼은 LG다. 스스로의 의지는 아니었다. 지난 2차 드래프트에서 넥센의 보호선수 명단 40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박경수의 군 입대로 2루수 공백이 생긴 LG는 바로 그를 낚아챘다. 당시 넥센 한 선수는 “일경이 형이 구단의 처사에 무척 어이없어 했다”며 “팀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의 말로가 이렇게 처참할 줄 몰랐다”라고 전했다. 악이 받쳤던 까닭일까. 김일경은 LG 이적 당시 소감에 대해 “MBC 청룡 어린이회원 출신이다. LG로부터 지명 받고 기뻤다. 날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넥센에서는 나를 백업 요원으로만 생각했다.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한 선수는 “일경이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라고 했다.
26일 잠실 넥센전은 분풀이 무대에 가까웠다. 1회 첫 타석에서 그랜드슬램을 치며 선취점을 올렸고 선두타자로 나선 4회 중전안타를 때리며 시즌 첫 멀티히트를 완성했다. 8회 1사 1, 3루 찬스에서는 1루수 앞 희생번트로 3루 주자 양영동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날 LG의 7득점 가운데 절반 이상(5타점)을 책임지며 향후 주전 경쟁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LG는 9회 마무리 레다메스 리즈가 3볼넷 3실점(3자책) 난조를 보이며 7-9로 역전패했다. 김일경의 활약마저 빛을 바랜 건 아니다. LG는 올 시즌 걱정거리였던 2루수 고민을 훌훌 털어버리게 됐다. 김일경 역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며 새 둥지에서의 화려한 변신을 예고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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