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남자의 눈물이 뜨겁다. 고려 시대 강력한 무신 정권을 배경으로 한 MBC <무신>에서 주인공 김준 역을 맡은 배우 김주혁의 이야기다. 2003년 영화 <싱글즈>, 2005년 SBS <프라하의 연인>,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2008년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등, 힘들 때 어깨를 토닥여줄 것만 같은 따뜻함으로 다가왔던 배우 김주혁과 ‘뜨겁다’라는 형용사라니. 많은 이들에게 이 조합은 어색할지 모른다. 그만큼 피라미드의 최하층인 노비에서 정권 최고 자리에까지 오르며 매 순간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있는 김준은 배우 스스로에게도 낯선 캐릭터다. “처음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망설임도 있었어요. 한 번도 연기해본 적이 없는 캐릭터이거든요. 하지만 김준처럼 온화한 인물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변한다는 점에 끌렸어요.” 지난해부터 감지된 몇몇 모습도 그의 궤적과는 분명 달랐다. 김주혁은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에서 어눌하면서도 독특한 유머를, tvN < SNL 코리아 >에서 영화 <아바타>의 나비 족 분장까지 소화했고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술렁였다. 조용할 것만 같았던 남자의 변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김주혁은 이런 변화에 대해 무덤덤하다. “특별한 계기라고 할 것까진 없고요. 소속사랑 ‘이걸 하면 잘 될까?’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죠. 그러다가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일 아니라는 듯 이어지는 그의 말에서 쓸데없이 들어간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 낯을 가리기도 하고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성격이 못돼요. 하지만 연기를 할 때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잖아요. ‘성격으로 조금 외향적으로 바꾸면 목소리 톤이나 감정 강약 조절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누구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런 자신을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김주혁. 물 흐르듯 묵묵하게, 하지만 쉼 없이 움직이는 김주혁의 연기는 그래서 거추장스러운 장식이나 불필요한 포장이 없이도 빛난다. “영화 <투혼> 찍을 때 김선아 씨도 그랬고 주변 사람들도 저보고 재밌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라며 소탈하게 말하는 김주혁의 눈빛은 꾸미지 않아 더욱 믿음을 주고 있다. 다음은 그런 그의 눈빛을 닮은, 새벽 6시에 흥얼거리는 음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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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teve Barakatt의 < Love Affair >
투명하고 상쾌하다. 김주혁이 첫 번째로 추천한 곡은 스티브 바라캇의 ‘Flying’. 시작부터 나오는 경쾌한 아침을 여는 듯한 바이올린 선율과 피아노의 연주가 어울리는 이 음악은, 가사 없이도 충분히 듣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김주혁 또한 이 음악을 “달리면서 듣기 좋은 곡”으로 표현한다. “아침 일찍 출근하시는 분들이나 조깅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특히 좋을 것 같아요. 아마 신선한 산소를 들이마시는 기분이 들 거예요.” 1987년 데뷔한 스티브 바라캇은 지난해 4월 정규 앨범을 발매하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Flying’ 이외에도 ‘Rainbow Bridge’, ‘Day By Day’ 등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2. Andy Williams의 < Moon River: The Very Best Of >
김주혁이 추천한 두 번째 곡은 영화 <대부>에 삽입된 곡이다. 니노 로타가 작곡한 이 곡은 악기 버전에서 ‘Love Theme From The Godfather’로, 영어 보컬 버전에서는 ‘Speak Softly Love’로 불리고 있다. 김주혁은 <무신>의 김준에게 비장함을 담기 위해 제목과 가사에서 애절함이 묻어나는 이 곡을 자주 듣고 있다고. “<무신>에서 나오는 격구(고려 시대 마상경기, 폴로와 비슷하다) 장면은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일종의 전투 같거든요. 이 음악은 ‘남자가 싸우러 간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 장면에 어울리는 거 같았어요. 얼마 전 영국의 오페라가수 폴 포츠가 다시 부른 버전도 들었는데 애절함이 더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맡은 김준과 정말 맞는 음악 같아요.”
3. 존 박의 < Knock >
김주혁이 세 번째로 추천한 곡은 Mnet <슈퍼스타K 2>로 얼굴을 알린 존 박의 첫 미니앨범 타이틀곡이다. 그동안 중저음 대의 목소리로 매력을 보여줬던 존 박은 이번 타이틀곡 ‘Falling’으로 가성까지 사용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작곡가인 앤디 플래츠가 작곡하고 존 박이 가사를 쓴 이 곡은 브릿팝의 분위기에 ‘까맣게 번지는 하늘 위에서 한없이 추락하는 날 보고만 있네요’처럼 쓸쓸한 가사가 녹아든 것이 특징이다. 김주혁 또한 “라디오에서 신곡을 듣게 됐는데 가사가 좋더라고요. 예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어요”라며 추천했다.
4. Maroon 5의 < Moves Like Jagger >
지난해 여름 발표된 < Moves Like Jagger >는 신나는 비트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피처링으로 참여해 더욱 화제가 됐다. 김주혁 또한 이 곡이 주는 흥겨움을 좋아해 추천했다. “이동 중에 라디오에서 듣게 됐어요. 휘파람 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청량감이 있어서 그런지 가끔 흥얼거리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는 거 같아요.” 김주혁의 말처럼, ‘Moves Like Jagger’는 이른 아침에 들어도 충분히 몸을 들썩일 수 있는 음악이다. 미국 NBC의 < The Voice >에서 마룬 5의 아담 리바인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라이브로 처음 공개했으며 그와 동시에 US iTunes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5. 최호섭의 <바람아 불어 / 세월이 가면>
김주혁이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은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다. 국내에서 수많은 가수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는 이 곡은 김주혁에게도 특별하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제가 직접 부르기도 한 노래에요. 물론 잘 부르지는 못했지만, 그때만큼은 역할에 푹 빠져서 불렀어요.” 김주혁은 영화에서 늘 곁에 있었지만, 사랑하는 여자 윤경(이요원)에게 고백 한 번 하지 못하는 광식 역을 연기했다. 절실하지만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의 사랑을 김주혁은 곧은 목소리로 표현했고 “가끔 생각나서 흥얼거리게 되더라고요”라는 배우의 말대로 관객에게도 원곡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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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을 50부작 사극으로 시작한 김주혁은 지금도 <무신>의 김준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이환경 작가 선생님께서 10년 동안 준비하신 작품에 합류한 만큼 지금은 머릿속에 온통 <무신> 생각뿐이에요. 사극이라는 장르가 낯설었고 50부작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걱정도 했지만, 고민은 길게 하지 않았어요. 반년 동안 매주 시청자 여러분을 만나게 될 테니 흡족하게 드라마를 시청하실 수 있도록 계속 온 힘을 다하려고요.” 매일 새벽 촬영을 위해 용인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배우 김주혁의 필모그래피를 한층 더 뜨겁게 해주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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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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