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그림살롱 93회|서양화가 강정진 ‘자전거 타기’ 시리즈
분홍색 벚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산길 오르막 흙길을 하늘색 자전거를 끌고 올라섰다. 시원하게 뚫린 내리막길…. 따르릉 전속력의 바퀴처럼 쭉쭉 뻗어가는 푸르른 꿈이여!
유리구슬 같은 비눗방울이 투명한 얇은 막 속으로 풍경을 담아 하늘로 날아 사라지곤 했다. 무지개 색 빛나는 방울들이 후후 아이의 입김에 날아오를 때마다 아카시아 기다란 꽃대엔 하얀 꽃송이들이 그리움처럼 주렁주렁 피어났다. 가슴을 파고들면 곧 뜨겁게 달아오를 듯 알싸한 향기는 온통 강변 숲길을 물들였다.
새들과 강물과 형형색색 꽃송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 한 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와 분주한 하루의 일과를 알리곤 했다. 오늘은 호랑나비, 배추흰나비들이 마치 주인공처럼 저마다 날개의 무늬를 팔락이며 계절을 찬미했다. “꽃향기는 빨리 증발하죠. 우리들은 그것들을 부지런히 모아야 하거든요. 향기 속에 꽃들의 체온이 녹아있는 걸, 아셨나요?” 햇살의 명랑한 속삭임으로 동이 텄다. 단지 꽃향기 바람에 날린 것뿐인데, 마음엔 네가 맴돌고 하나의 자리만 있는 자전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늘어진 실버들 유연한 허리를 굽혀 강물과 닿을 듯 말 듯 가벼운 장난을 걸다 안녕하며 가벼운 윙크를 보내온다. 런치 파티가 예정된 오리 떼들이 은빛 물살을 가르며 샛강 작은 섬을 부지런히 오간다. 섬 둘레엔 남빛 앵초 꽃밭이 자연의 신비로운 수수께끼들을 가득 품었다. 그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생(生)의 최고 만찬을 즐기던 젊은 오리가 연단으로 올라서며 제안을 했다. ‘여러분, 잠시 고개를 돌려 저 얕은 물결을 보세요. 어른거리는 노랑과 연두색 바퀴 그림자, 보이시나요?’
스펙터클한 무대처럼 둥실둥실 떠 있는 원(圓). 물살을 가르며 펼치는 오리 떼의 군무(群舞)는 황홀했다. 수면의 일렁임 따라 아름다운 색깔로 물빛이 변주될 때 마다 녹색 머리의 수컷과 갈색 얼룩 암컷의 청둥오리들이 가지가지 채광(彩光)으로 정오의 시간을 수놓았다.
오늘은 북두칠성이 항해의 길잡이로 나설 참이다. 화사한 레몬옐로 달빛은 사랑스럽게 소녀의 창(窓)에 동그랗게 그려졌다. 그러자 자유로운 재즈리듬처럼 여행을 하고 온 두 바퀴의 자전거들이 밤하늘에서 쏟아졌다. 화성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이티(E.T.)를 만나고 왔노라 우쭐대며 말하는 동안 나이든 몽상가는 풀밭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기나긴 여행의 피로를 달랬다. 그 입김같은 가락에 섞여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바퀴소리, 사람의 동그란 발자국 소리….
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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