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장]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1993년 12월 합참이 결정한 해군의 숙원사업이었다. 이를 추진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 사람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2007년 6월 22일 제주 평화포럼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평화는 지킬 힘이 있어야 뒷받침이 가능하고, 안보보장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으며 제주 해군기지는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 이 발언은 어찌 보면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안보관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지금까지 환경파괴의 가능성, 미군기지로의 활용가능성, 설계오류 등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휘말려 4년 9개월이나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2년 3월 7일 첫 공사장 발파작업을 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다. 여전히 국가안보에 관한한 ‘무뇌’(無腦)상태에 있는 일부 정치세력들의 반대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제주도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찬성하는 사업이다.
사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우리의 생존(survival), 소위 사활적(vital) 국가이익이 걸린 사업으로, 결코 정쟁(政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일부 정치세력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을 편향된 이념 및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국민들의 안녕과 복리, 더 나아가 생존을 다루는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정치세력들에 대해서는 이번 4.11 총선, 더 나아가 대선에서 반드시 심판해 정치판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우리 수출입 물동량의 99%(정확하게는 99.7%)정도가 제주 남방항로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제주 남방해역은 중·일간 해양자원 확보를 위한 패권경쟁으로 인해 갈수록 분쟁가능성이 커지는 지역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수출입 물동량 수송을 안전하게 지켜내는데 필요한 항로보호 능력(군사력)을 우리 해군이 갖추는 것은 우리의 생존, 소위 사활적 국익이 걸려 있는 안보적 사안인 것이다.
사활적 국익은 그 본질상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것이며, 이것과 직결되는 문제에 관한한 양보와 타협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죽고 난 뒤에 평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0세기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지성의 한 전형으로 손꼽히는 세계적인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1991~1993년 이탈리아 언론인과의 대담과 에세이(essay)를 실은 책(Karl Popper, The Lesson of This Century(Routledge, 1992))에서, 진정한 평화는 무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함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평화, 평화,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지구상의 평화는 적어도 평화가 언젠가,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해서 확립될 때까지 무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린 지금쯤은 배웠어야 합니다...원자폭탄이 도처에 널려있는 세계에서 무기를 버리자고 제안하는 것은 완전히 허무주의입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논리입니다. 무기를 가지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평화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나는 평화를 위하여 이른바 평화운동이라는 것이 반대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운동이 침략자를 고무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배웠습니다.“
칼 포퍼의 이런 주장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을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평화를 유지하는데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훈의 논리적 연장선상에서 보면,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전쟁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의지와 수단(군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의 비극적 결과는 평화에 대한 열망만으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것이다. 항상 잠재적인 적들과의 군사전략적 균형을 맞춤으로써만이 확실히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가 필요한 진정한 이유인 것이다.
앞으로 제주 해군기지에는 기동함대가 배치될 예정에 있다. 기동함대는 특정해역을 방어하는 임무를 가진 해역함대(예: 동해 1함대, 서해 2함대, 남해 3함대)와는 다른 작전적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후방에서 해역함대를 지원하거나, 적 해군의 후속지원군의 증원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기동함대 기지는 반드시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무력을 투사할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지도를 보라.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이런 지역이 사실상 없다. 우리 해군이 제주도를 기동함대 기지로 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서해상에서의 북한과의 해상충돌, 중·일간 남방해역에서의 해양 분쟁에 신속히 대처하는데 있어 한반도 전체에서 가장 최적지가 바로 제주 해군기지인 것이다.
제주도가 아니면 어디에다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동함대 기지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 평화의 섬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작금의 허무주의자들(일부 정치세력들과 시민단체들)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같은 사활적 국익이 걸린 사안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이런 허무주의자들의 뇌(腦)속에 한번 들어가 그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양낙규 기자 if@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