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華陀)는 명의(名醫)의 대표 인물이다. 우리 모두 한번쯤은 읽어 보았던 소설 삼국지(삼국지연의)에는 관우에게 오늘날의 외과 수술과 비슷한 시술을 행하는 화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실은 이 소설보다 중국의 정사(正史)에 전하는 이야기가 우리를 더 놀라게 한다. 후한서(後漢書)에 화타는 '마불산(麻沸散)'이라는 마취제를 개발했고 이 마취제를 써 개흉(開胸) 수술과 두개(頭蓋) 절개를 시행했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화타가 개발했다는 마불산의 내력은 슬픈 일화를 품고 있다. '麻沸散'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불(沸)을 마비시키는 가루약' 정도가 된다. 여기에서 '불(沸)'은 화타의 아들 이름이라고 한다. 화타는 당시의 여느 의사와 마찬가지로 산에 가서 직접 약초를 캐어 약재로 활용했다. 그날도 그는 아내와 함께 아들 불을 거느리고 산에 올라 약재를 채취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한창 약재를 캐고 있는데 잘 놀고 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부부는 이리저리 아이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아이의 입에는 어떤 열매가 물려 있었다. 그 후 화타는 이 열매를 집중 연구했고 열매의 적당량을 사용하면 마취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그는 이 열매를 기초로 세계 최초의 수술용 마취제를 발명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마비시킨 약 이름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기원전 2세기 무렵의 화타 이야기를 듣고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합성물질이 아닌 천연 한약재를 이용해서 마취약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은 제기해볼 만하다. 사실 18세기에 일본에서 절제술이 외과에서 많이 사용된 만큼 마취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인물이 하나오카 세이슈(華岡靑洲)라는 사람이다. 미국에서는 1846년에 에테르를 근대의 마취제로 사용해 수술이 이뤄졌는데, 40년이 앞선 1804년에 하나오카는 자기가 개발한 마취제를 써 세계 최초로 유방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뤘기 때문이다. 이후 하나오카는 유방암 관련 153건의 수술 이외에 수많은 수술을 마쳤고, 그의 놀라운 의술 때문에 1000명이 넘는 제자가 문하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하나오카 세이슈는 '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華岡靑洲の妻)'(1966)라는 제목의 소설이 영화,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면서 일본 내에서는 널리 알려졌다.
한국한의학연구원 문헌연구그룹은 최근 하나오카의 마취술과 관련이 깊은 마약고(麻藥考)라는 서적을 입수해 검토했다. 이 책의 서문은 1796년에 씌어졌으며 우리는 서문 작성 이전에 수많은 마취 경험과 수술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특히 하나오카 세이슈가 모셨던 스승 대에서부터 마취제가 나와 수많은 사람에게 외과수술을 거행했음을 확인했다. 이 자료가 놀라운 것은 마취에 관련된 이 모든 내용이 인공 화학 조합물이 아니라 천연 한약 약재들의 조합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이며 소개된 마취제 대부분이 오랜 기간 동안의 임상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천연자원에서 유래한 약물 개발이 대세를 이룸에 따라 유엔환경계획(UNEP)이나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와 같은 자연자원 보호나 관련 특허를 다루는 국제기구는 생물자원이나 전통지식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우리도 개발 가능성이 높은 우리의 자연자원이나 관련 전통지식을 추리고 찾아내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남겨진 방대한 자료는 도서관 서가의 장식물이나 고답적인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제대로 활용만 한다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막아주고 신약 개발의 지름길을 일러주는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오민 한국한의학연구원 문헌연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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