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미나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학교폭력이 날이 갈수록 흉포해지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대구의 한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그 심각성을 절감하는 분위기다. 대통령도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만나 문제점을 청취해야 할 정도다. 성인범죄보다 더 죄질이 나쁜 것도 많다 하니 걱정이긴 걱정이다. 오죽하면 국가가 나서 학교폭력과의 전쟁까지 선포하겠는가. 소위 '일진'이라는 문제학생들을 대거 단속하고 경찰관을 겸임교사로 임명하는 등 교육당국과 경찰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교권 하락, 지나친 성적 경쟁, 결손가정, 빈부 심화 등 각종 원인이 있을 것이다. 상담교사 증설, 범죄예방교실, 대안학교 등 다양한 대책들도 나온다. 물론 다 일리가 있다. 고육지책으로 나온 결과들이니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치들보다 얼마 전 청주의 한 여교사가 실행한 작은 실험이 더 눈길을 끈다.
여교사의 대책은 바른말 쓰기 운동.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하루 10회 이상 욕설을 하는 상황에서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 느꼈단다. 달콤한 엽서 쓰기, 욕설 없는 날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시했고, 아이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욕 없이는 단 두 문장을 못 잇던 아이들이 눈에 띄게 욕설 사용이 줄어들었다. 무심결에 내뱉은 욕이 남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욕설이 없어지자 학교폭력이 줄어든 건 물론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법이다. 말을 바꾸니 생각이 바뀌고 행동도 바뀐 것이다.
실제로 욕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실험에 의하면 욕을 한 사람의 침을 실험 쥐에게 투여하자 쥐가 즉사했다. 그만큼 욕의 독성이 강하다는 얘기다. 또 욕은 습관으로 굳어진다. 평소 욕을 많이 쓰는 그룹은 심한 욕을 들을 때 안정 상태가 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평상시 습관적으로 욕을 하니 욕을 듣는 비정상적 상태에 대해서도 이미 내성이 생긴 것이다.
깨진 유리창 효과라는 게 있다. 유리창의 작은 금 하나를 방치하면 결국 그 집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잘되는 집구석은 조금만 유리창에 금이 가도 바로바로 갈아 둔다. 그러나 안되는 집구석은 유리창이 깨지든 말든 신경을 안 쓴다. 그러한 무신경이 결국 집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악명 높은 뉴욕 지하철 범죄도 지하철 낙서를 지우자 줄어들었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작은 욕설을 방치하면 학교폭력과 같은 범죄로 발전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욕 권하는 사회다. 욕하는 아이들 중 76%는 또래 친구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아이들 세계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같이 욕을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 일부러 욕 몇 마디를 섞어 쓰는 경우도 많다. 욕도 우리의 전통문화라며 따로 소개하기도 한다. 아예 욕을 중심 테마로 잡은 영화도 있다. TV나 라디오방송에서도 심한 욕만 아니라면 애교 정도로 넘어간다. 이러니 이제는 '바보, 멍청이' 정도는 욕인지 아닌지 구분도 잘 안 된다. 온 사회가 욕에 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박찬호 선수는 후배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대말을 쓴다고 한다. 나이도 훨씬 많고 후배 선수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던 코리안 특급 아닌가. 그런 그가 '말본새'부터 다잡고 있다. 덕분에 그가 소속된 구단엔 화기애애함이 묻어난다. 이런 분위기가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아직도 체벌과 욕설이 난무하는 한국 스포츠 세계에서 박찬호 선수의 존대말이 돋보이는 이유다. 학교폭력의 해결책은 바른말 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깨진 유리창부터 갈아야 한다.
조미나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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